베른하임의 소설 등 금주의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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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com 오현아 기자

이번 주 나온 책을 보면 가을임을 느낍니다. 지난 주말 서울을 후끈 달군 날씨를 생각하면 아직 가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구요? 소설가 김훈 님과 한수산 님이 펴낸 산문집을 읽어보세요. 햇빛이 정수리에 '쨍'하니 내리꽂혀도 선선한 그늘 찾아 느긋하게 책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원색의 책표지만큼이나 자극적인 베른하임의 소설이 한 권 정도 옆에 있어도 괜찮겠지요.

★'잭 나이프'처럼 섬뜩한 사랑 이야기
엠마뉴엘 베른하임의〈잭 나이프〉 (이원희 역, 작가정신)

어느 날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남자의 등을 찌릅니다. 10년 넘게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던 날카로운 잭 나이프로 말입니다. 그 남자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바다 건너 영국까지 갑니다. 그 남자와 시작하는 동거 생활. 남자의 흉터에 감미로운 키스를 하는 여자.

참 기이한 설정이에요. 이들의 관계는 '잭 나이프'처럼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롭죠. 그러나 여자가 남자의 등에 낸 흉터처럼 지워낼 수 없는 거예요. '1백쪽의 작가'로 알려진 엠마뉴엘 베른하임은 주로 여성의 괴벽을 다루고 있어요. 남자가 남기고 간 물건을 모두 모으든, 10년 넘게 잭 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든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분들은 베른하임의 소설을 읽어보세요.

사랑은 집착일까요? 아니면 집착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전거 페달 힘겹게 밟으며 흘린 땅방울
김훈 님의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

'풍륜(風輪)'. 소설가 김훈 님이 1년 여 동안 전국의 산천을 끌고다닌 자전거 이름입니다. 벌써 쉰을 훌쩍 넘긴 나이로 말입니다. 오로지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그래서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임을 절감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떠난 것입니다.

자동차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이름없는 고갯길에서도 '풍륜'에 몸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습니다. 눈가에 흘러 내리던 짜디 짠 땀방울에서, 허벅지 근육에 배어나오는 땀방울에서 김훈 님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요? 자연은 삶의 터전이기에, 그리고 삶의 한 복판에 온몸으로 기어들어가겠다는 심정이기에 눈덮인 태백산맥도 넘을 수 있었겠지요.

'쩡'하니 차갑게 언 겨울 공기에 김훈 님이 토해내던 뜨거운 입김을 느껴보세요. 풀리지 않는 근육통에도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던 그 치열한 정신에 동참하시게 될 겁니다.

★그냥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한수산 님의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해냄)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김주경 옮김, 동문선 펴냄)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고 해요. '빨리빨리'만 좇는 요즘이기에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열망 역시 적지 않나 봅니다. 한수산 님의 산문집을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변하지 않는 것은 아침의 우유 배달 아저씨와 조간 신문을 넣는 아줌마의 자전거뿐이라는, 모든 것이 아찔하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자고 일어났다 하면 모든 것이 변해 있죠. "그냥……이라는 말이 가지는 유유자적, 허물없고 단순하고 그러면서 오히려 따스하게 정이 흐르는 이 말, 그냥……이라는 이 말이 가지는 여유를 우리는 때때로 잊고 살" 정도로 우리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한수산 님이 풀어내는 따뜻한 글모음에 '그냥' 몸을 맡겨 보세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무료한 나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됩니다. 꿈꾸는 자의 푸근함에, 여유로움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음악의 향기를 찾아 유럽으로
〈오스트리아 음악기행〉〈이탈리아 음악기행〉(백의)

"수요일엔 모차르트를" 그러면 한 주를 여는 월요일에는? 월요일엔 해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의 단골 메뉴인 시트라우스의 왈츠를 들어보심은 어떨까요. 왈츠처럼 흥겹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 본 태생의 베토벤이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말년까지의 삶을 보냈던 오스트리아의 곳곳에는 베토벤, 모차르트 뿐 아니라, 현대의 대 지휘자 카라얀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베토벤은 어떤 길을 산책했길래, 저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써야 했을까요? 모차르트가 클라리넷 협주곡을 작곡한 집은 어떤 곳인지 둘러봄은 어떨까요.

세계 음악의 본 고장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남아 있는 음악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음악 기행은 여러분의 눈과 귀를 한껏 만족시켜 줄 것입니다.

★동강 물길 지나 봉평 산자락까지
김재일 님의 〈생태기행 1,2〉(당대)

"생명에 대한 감수성 결핍, '생태맹'이 가장 큰 문제죠." 〈생태기행〉을 펴낸 김재일 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입니다. 아무리 자연에 대해 많이 알아도 생명을 마음으로 느낄 수 없다면 '생태맹'에 걸릴 수 있다고 해요. 김재일 님은 7년 여 동안 굽이굽이 전국의 산자락을 오가며 '자연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했어요. 그래야 '자연 생명에 대한 예의' 또한 싹틀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펴낸 〈생태기행 1,2〉에서는 생태기행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중부권과 남부권을 소개하고 있어요. 영월 동강 뿐 아니라 가을이면 메밀꽃 흐드러지게 피는 강원도 봉평 등 물 좋고 산 좋은 곳은 다 나와 있죠. 김재일 님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요.

자연을 느끼고 싶으신 분은 김재일 님과 함께 생태기행을 떠나보세요. 살아 숨쉬는 자연이 바로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 기사
*잭 나이프 (베른하임 지음)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한수산 지음)
*오스트리아 음악기행, 이탈리아 음악기행 (귄터 엥글러 지음)
*생태기행 1ㆍ2 (김재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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