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대출금리 한 자릿수로 낮춘다 … 작은집 망하면 큰집도 망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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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기업은행장

“이름에 걸맞게 중소기업을 모시겠다. 최고 12%에 이르는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재임 중에 한 자릿수로 낮추겠다.”

 조준희(57) 기업은행장은 “지금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 경기 양극화로 중소기업이 한창 어려워질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은행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다. 그는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중소기업을 쥐어짜면 당장 이익 좀 더 내고, 배당 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작은집(중기) 다 망하면 결국엔 큰집(은행)도 망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중기 대출금리를 최고 2%포인트 내리고, 조 행장의 남은 임기 2년 내에 ‘한 자릿수 최고금리’를 실현할 계획이다. 그는 “당장 내년 이자수익이 2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이라며 “다들 아우성인데 은행 혼자 이익 많이 내는 건 이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은행에 불만이 많다.

 “은행들이 반성해야 한다. 수수료 인하도 그렇고, 대출 금리도 그렇고… 꼭 여론이 등을 떠밀어야 했다. 이러면 사회의 공감을 못 얻는다. 비난받기 전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에 각종 수수료를 인하했다고 혹시라도 이걸 다른 곳에 전가하면 안 된다. 그러면 반성도 아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는 ‘잔머리 굴렸다가 드러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9월에 은행권 처음으로 연체금리를 내렸는데.

 “돈을 제때 못 갚으면 높은 벌칙 금리를 물리는 게 학문적으론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정의 차원에서 보면 어려운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 그들이 빨리 회생하게 돕는 게 맞지 않겠나. 중기 대출도 마찬가지다. 기존엔 빌려준 돈을 망하기 직전에 재빨리 회수하면 건전성 관리를 잘했다고 했다.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한다. 기업의 체력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미리미리 도와서 살려내야 한다. 그게 진짜 건전성 관리다.”

 -비 올 때 우산 뺏지 말자는 건가.

 “물론 현실적으로 쉽진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 오면 우산 빼앗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는 것과, 최대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자세로 임하는 건 천지차이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 50년 역사에서 처음 나온 내부 승진 행장이다. 1980년 서울 방산지점(현 청계5가지점) 수습행원으로 출발해 30년 만인 지난해 12월 행장이 됐다. 그가 취임한 뒤 1년 동안 기업은행은 안팎으로 확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나도 공무원이지만, 기존에 기업은행장을 도맡다시피 한 공무원 출신들보다 훨씬 낫다”고 말할 정도다.

 -올해 개인고객이 많이 늘었다.

 “지난해 말 944만 명이었는데 지금 1045만 명이다. 증가 폭이 예년의 두 배쯤 된다.”

 -혹시 직원들을 쥐어짠 것 아닌가.

 “취임 직후 직원들이 본인·가족 명의로 통장 여러 개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실적이 목표에 미달하면 사유서를 쓰게 하는 관행도 없앴다. 50년 만에 내부 출신 행장이 나오니 직원들이 도와준 것 같다.”

 - 기업은행이 왜 개인고객을 늘려야 하나.

 “국책은행이라지만 정부 지원 한 푼 안 받는다. 예금 없이는 중기 대출도 없다. 올해 개인예금이 7조원 가까이 늘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국민의 20% 정도는 아직도 기업은행이 기업고객만 상대하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내년에 집중적으로 알리겠다.”

 그는 실적 미달자에 대한 각종 제재를 없앤 대신 올해 신규고객왕·건전성관리왕 등 포상제를 새로 도입했다. 1년간 수상자와 현장 영업직 등 1300명을 행장실로 불러 행장 의자에 앉히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이런 행사는 왜 했나.

 “내가 행장이 되니까 몇 년 전 은행을 떠난 동기가 축하한다며 찾아왔다. 지점장까지 했던 친구인데 행장실에 한 번도 못 들어와 봤다더라. 충격을 받았다. 은행에서 수십 년 일하면 행장실 한 번은 들어와 봐야 ‘애행심’도 생기고 할 것 아닌가.”

 -혹 연임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닌가.

 “외환위기 때 내가 차장이었다. 동년배의 3분의 1이 은행을 떠났다. 내가 행장까지 됐는데 더 욕심을 내면 되겠나. 내 능력 가지고 기업은행을 위대한 은행으로 만들 순 없다. 하지만 후배 중에 그런 능력 가진 사람이 나왔을 때를 대비해 기존 악습을 없애고 기반을 다져 놓을 것이다. 연임? 안 한다. 내가 나갈 거다.”

김선하 기자

◆조준희 기업은행장=지난해 12월 창립 50년 만의 첫 내부 출신 행장이 됐다. 1980년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신입 행원으로 입사해 지점장과 종합금융본부장·전무를 지냈다. 10년 넘게 도쿄지점에서 근무한 일본통이다. 기준과 원칙, 인화와 단결을 중요시하는 덕장으로 평가받는다. 2008년 3월 개인고객본부장 시절 최초로 소액예금을 우대하는 역발상 상품 ‘서민섬김통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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