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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게 시련 닥칠 201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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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북한이 곧장 체제 불안정에 빠지거나 외부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대미·대남 유화자세를 보이진 않을 것이다. 연말까지 ‘위대한 후계자’ 김정은은 장례를 치르면서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이 공식화한 권력승계를 공고히 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고모부이자 사실상 섭정인 장성택의 보좌를 받으며 국방위원회 소속 고위 장성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낼 것이다. 평양의 엘리트들에겐 다른 방도가 없다. 스스로의 정통성을 지키고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선 김씨 가문의 권력세습과 개인숭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은 대단히 상징적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이자 북한 스스로 ‘강성대국 첫해’로 선포한 해이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이 최근 남한·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을 두고 김정일이 강성대국 달성에 필요한 식량과 경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번 주중에 대북 영양지원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김정일의 사망으로 보류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북·미 접촉을 계속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유예 및 6자회담 복귀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김정일이 북·미협상을 통해 제네바 핵 합의에 도달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내년은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될 것으로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은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으로서 ‘무기감축 협상’을 요구한 바 있다. 핵기술을 해외에 이전하지 않고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풀고 경수로를 지원하며 북한을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능력을 과시하고 시리아와 미얀마 등에 부분적으로 핵기술을 이전하는 한편 미국 과학자를 초청해 감춰온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는 것 등으로 말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우리와 거래하지 않으면 미국이 기다리는 시간만큼 우리는 더 위험해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점들과 미 당국자들의 의회 증언들을 종합할 때 북한은 내년에 새로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이 모든 문제들을 장기적으로 다뤄가려는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단, 유연한 자세는 절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한·미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아 챙긴 뒤 미국의 ‘적대적 정책’을 핑계 삼으며 핵실험을 강행했을 것이다. 아니면 얼마나 많은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고 핵실험을 늦출지를 결정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김정은이 장례식과 권력승계를 마무리한 내년 봄이나 여름쯤 협상을 지속할지 아니면 다시 도발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때 내리는 결정에 따라 북한 지도부 내에 갈등이 시작됐는지, 아니면 김정은과 장성택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받을 압박은 엄청날 것이다. 만일 그가 또 한번 공개적으로 핵능력을 과시하고 나선다면 국제사회는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할 것이다. 거꾸로 핵도발을 자제한다면 핵개발 포기를 진전시키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20년의 통치 경험을 가졌던 아버지에 비해 아무런 경험이 없는 20대의 김정은으로선 군부에 정보와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방위원회는 더 많은 발언권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김정은과 충돌할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은과 장성택이 확고히 권력을 장악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정일은 외부와의 갈등을 통해 내부적인 단결을 끌어내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김정은은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역할이 단순히 ‘위대한 후계자’로서 위상을 과시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는 아버지가 시작해 놓은, 자칫 실수하면 파멸할 위험성이 큰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렇다고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이 저절로 붕괴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북한 지도부는 김씨 왕조를 유지해야 할 강력한 동기가 있으며 김정일은 최대한 안정적인 권력승계 방안을 준비해 놓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이 지금까지 보여준 벼랑 끝 전술에 이은 양보, 그리고 핵개발이라는 행동 패턴을 되풀이하는 것이 ‘위대한 후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되는 시기가 분명 올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