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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억누르는 사법 권력에 화살 한번 날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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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3년 만에 영화 ‘부러진 화살’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카메라 플래시가 오랜만”이라며 활짝 웃었다.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석궁테러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는 “부당한 권력에 주눅든 이들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의 정지영(65) 감독이 돌아온다. 다음 달 19일 개봉하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들고서다. ‘까’(1998) 이후 13년 만의 충무로 복귀작이다. 사회성 짙은 작품을 빚어온 ‘노장’의 시선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재구성했다. 1995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조교수는 동료 교수가 출제한 대학별 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2005년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도 패소하고, 항소마저 기각된 그는 2007년 1월 항소심 재판장인 부장판사를 그의 집 앞에서 석궁으로 쏜 혐의로 기소돼 2008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김 교수 측은 사법부가 괘씸죄를 적용, 과실상해죄를 살인미수죄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외면한 채 한 개인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정 감독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에 집중된다. 개인을 억누르는 집단의 문제를 건드린다.

영화에서 김 교수(안성기·오른쪽)와 박 변호사(박원상)가 재판부에 맞설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영화에선 정 감독과 20년 만에 호흡을 맞춘 안성기가 꼬장꼬장한 성격의 김 교수로 변신, 판사에게 “말 끊지 마세요” 등 ‘발칙한’ 대사를 날린다. 엄격한 법 해석으로 판검사들을 궁지로 몰아간다. 사법부, 이른바 권력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따진다. 정 감독을 21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지막 장면부터 얘기해보자.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돼 실형을 살게 된 김 교수가 파안대소하는 게 인상적이다.

 “법정 투쟁 끝에 김 교수가 주눅들었다면 영화도 무겁게 끝났을 것이다. 그는 올 1월 만기 출소했지만 그는 복직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지칠 줄 모른다. 차라리 그가 법 공부를 계속해서 사법고시를 봤으면 좋겠다. 실제 인물인 김 교수와 그의 파트너 박훈(박원상) 변호사가 재미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영화가 재미있게 나왔다.”

 -예민한 소재다. 김 교수를 미화하는 건 아닌가. 유념했던 부분은.

 “김 교수의 편에 서지 말고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공판 기록에 의존한 영화다. 김 교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건 모르고 하는 얘기다. 재판정 장면은 90% 이상이 사실이다. 당시 김 교수는 법대로 했을 뿐이다. 당시 사건은 사법부가 잘못한 거니까 그렇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룰을 지키고 법대로 하는 게 진정한 보수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게 보수는 아니다. 원칙주의자인 김 교수는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진보 변호사와 힘을 합쳐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나. 영화에서 김 교수는 ‘법은 쓰레기’라는 박 변호사의 말에 ‘법은 아름답다’고 받아친다.”

 -사법부의 반발이 예상된다.

 “거대권력의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일 뿐이다. 개인과는 상관없다. 자신을 돌아보는 판사들도 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영화에 대해 뭐라고 했나.

 “교도소에 면회 가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사실을 영화화하는 데 왜 동의를 구하나. 형편없이 만들면 나중에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김 교수는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는 영화가 내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며 좋아했다. 숫기 없고 소심했던 그를 ‘투사’로 만든 건 사회다.”

 -문성근이 ‘보수꼴통’ 판사로 등장한 것은 허를 찌르는 캐스팅이었다.

 “김 교수 역을 맡기려 했지만 그가 워낙 바빠서 안성기로 정했다. 대신 촬영 분량이 적은 ‘꼴통’ 판사역을 맡겼다. ‘초록물고기’에서 보여줬던 비열한 깡패 이미지를 지적으로 바꾸라고 주문했다.”

글=정현목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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