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 되려 청장 사무실 해킹한 경찰간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경찰간부가 승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지방경찰청장 집무실을 도청하고 컴퓨터를 해킹하다 적발됐다.

 대전경찰청장의 집무실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 등을 설치한 혐의(정보기밀보호법 위반)로 21일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된 A(47) 경정. 올해 대전경찰청의 핵심 보직인 기획예산 계장으로 2년째 근무해 온 그는 내년 총경 승진 인사를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경찰대(3기)를 나와 대전경찰청의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아왔지만 승진 정원이 지방청별로 한두 명에 불과해 누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상관인 청장실 컴퓨터를 해킹하고 도청장치를 달아 청장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기로 결심했다. 대화 내용을 엿들으면 경쟁자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필요한 장비를 구입했다.

 A계장은 14일 오후 8시30분쯤 비서실을 찾아 “청장님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고 둘러댄 뒤 청장 집무실에 침입했다. 이어 청장이 사용하는 데스크톱 컴퓨터에 원격 제어 프로그램과 녹음 프로그램, 휴대용 마이크 등을 설치했다. A계장은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자신의 컴퓨터로 동일한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면 청장실 컴퓨터를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다음 날 A계장은 약 1분간 원격제어 프로그램에 로그인한 뒤 청장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에 아무런 권한 없이 접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틀 뒤인 16일 오전 10시 이상원 청장이 “컴퓨터 속도가 느려졌다”며 비서실에 점검을 지시했다. 비서실은 컴퓨터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 즉각 새 컴퓨터로 교체했다. 이 사실을 안 A계장은 이날 오후 6시쯤 비서실에 다시 들어가 같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A계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작동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청장의 컴퓨터를 켜놓고 나왔다.

비서설 직원은 청장이 자리에 없는 데도 컴퓨터가 작동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전산실에 문의했다. 다음 날인 17일 오전 컴퓨터 점검 결과 해킹 프로그램이 숨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경찰은 컴퓨터 분석 등을 통해 A계장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A계장은 “승진 욕심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졌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대전경찰청 태경환 수사과장은 “A계장의 컴퓨터에서 300개의 대화가 녹음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