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당·정·군 대동하고 조문 … ‘유훈통치’ 대내외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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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바라보는 김정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20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에 안치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조문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등이 참석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 장면을 이날 오후 2시쯤 방송했다. 조선중앙TV 화면캡처 로이터=뉴시스]

북한의 두 번째 ‘유훈통치’ 가 시작됐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17년 만에, 평양의 금수산기념궁전에서다. 김일성 사망 나흘째 아버지에 대한 조문으로 ‘유훈통치’를 시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역시 아버지 사망 나흘째인 20일 당·정·군 고위 간부를 대동하고 빈소를 찾았다.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2시쯤 김정일 시신 앞에 엄숙하게 서 있는 김정은과 그 충성세력의 모습을 방영함으로써 북한 새 지도체제의 출범을 대내외에 알렸다. 북한의 김 위원장 시신 공개는 사망 78시간30분 만이다.

 이날 김정은의 조문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 김경희 당 경공업 부장 등이 참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당과 국가, 무력기관의 책임 일꾼과 함께 김정일 동지의 영구(시신이 담긴 관)를 찾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국가 장의위원 1번인 김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빈소에서 참배한 뒤 상주 자격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의 바나비 존스 1등 서기관은 “이날 오후 평양 주재 외교관들과 국제기구의 직원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문하기 위해 금수산기념궁전을 다녀왔다”며 “후계자인 김정은이 일일이 조문객들을 맞았다”고 했다.

 김정은의 이날 조문 모습은 17년 전 김정일이 김일성을 조문할 때와 좀 달랐다. 김정일의 경우 동생 김경희가 바로 옆에 서 있었지만 김정은은 혼자 아버지의 유리관 주변을 돌았다. 김정은이 조문 도중 울먹이는 모습이 TV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유리관 속 김정일의 시신은 인민복 차림이었고 붉은 천이 가슴까지 덮여 있었다. 주변은 ‘김정일화’와 국화로 장식돼 있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김 부위원장의 이름 앞에 일제히 ‘존경하는’이란 존칭 수식어를 붙였다. 98년 ‘김정일 시대’를 개막할 땐 김정일의 이름 앞에 ‘경애하는’이라는 수식어였다. ‘김정은 시대’를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로 열겠다는 뜻이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이란 표현을 동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주력했다.

김수정 기자

◆유훈통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삼년상을 이유로 김 주석의 유훈(遺訓)을 내세우며 얼굴 없이 통치하던 시기를 가리킨 말. 김 위원장은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표어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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