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자락 ‘하얀 병원’ 불 밝혀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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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네팔 체블룽의 ‘토토 하얀병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현재 운영을 못 하고 있다.

네팔 체블룽(해발 2700m)에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작은 병원이 있다. 부산의 사단법인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지난 10월에 준공한 ‘토토 하얀병원’이다. 면적 99㎡(30평)인 단층 건물을 짓는 데 1년이 걸렸다. 지난해 10월부터 건축비 25만달러(2억9000만원)를 모금하고 4월부터 1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날아가 짓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었다. 히말라야 낮은 곳에 집 짓는 일도 원정만큼 어렵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데 이 병원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운영을 못하고 있다. 네팔은 도시에만 전기가 들어오고 히말라야 산자락 집들은 석유등으로 밤을 밝힌다. 이러니 힘들게 장만한 엑스레이 촬영기, 심전도기, 원심분리기 등도 무용지물이다.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니 의료진을 보낼 수도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전기 공급을 위해 소수력발전소를 세우기로 하고 기금마련에 나섰다. 병원에서 가까운 계곡에 50∼100㎾짜리 소수력발전소를 지으려면 20만달러(2억3200만원)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동참한 사람이 동양화가 김인옥(52)씨다. 그녀는 21일부터 27일까지 부산 해운대 아트센터에서 ‘히말라야에 빛을…’이라는 주제의 작품전을 연다. 작품 60여 점의 판매수익금은 발전소 건립기금으로 기부한다. 그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부문 특선 등 다양한 수상경력에 80여 차례 국내외 전시회를 거친 중견화가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소수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할 ‘제2차 낮은 원정대’도 모집한다. 건립기금이 모이는 대로 기술을 기부할 전기·토목기술자 10여 명을 모아 출발할 계획이다. 협성문화재단 등 부산지역 사회단체들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 권경업(59) 대표가 네팔을 도울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히말라야에 올랐을 때 등반 안내를 맡은 셰르파에 대한 기억이다. 정상을 밟은 뒤 하산하다가 셰르파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졌다. 힘든 구조 끝에 다리를 다친 채 살아나온 그가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한 것은 카메라였다. 정상정복 사진의 중요성을 안 셰르파는 목숨을 걸고 카메라를 지켰던 것이다. 권 대표는 “한국 산악인들의 세계적인 히말라야 원정기록 뒤에는 네팔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배여 있다”며 "이제는 우리가 보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사)아름다운 사람들=부산에서 활동 중인 산악인 겸 시인인 권경업씨가 1988년에 만든 봉사단체다. 600여 명의 회원들이 낸 회비로 부산 어린이 대공원과 사상역 입구에서 무료 급식소를 23년째 운영 중이다. 지난해부터 활동영역을 넓혀 히말라야에 병원 건립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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