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속 우편물 살리고 순직한 집배원…127년 우정 역사상 첫 국립묘지 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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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오후 1시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 집배원 두 명이 무릎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었다.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불어난 물이 길을 삼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 가던 차선우(29·사진) 집배원이 발을 헛디디며 급류에 휘말렸다. 그는 움켜쥐고 있던 우편물 8통을 동료에게 건넸다. 그중에는 한 기업이 외국 업체와 맺은 중요한 계약서도 있었다. 동료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그의 몸이 배수구로 빨려들어갔다. 차 집배원은 3일 뒤 한강 청담대교 남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순직한 지 5개월 만에 그의 죽음이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됐다. 지식경제부 산하 충청지방우정청은 차 집배원을 19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한다고 18일 밝혔다. 그의 유골은 수원시립납골당에 안치돼 있다. 집배원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은 1884년 우정총국이 설립된 지 127년 만의 일이다. 앞서 지경부는 차 집배원에게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1980년 고 오기수 집배원(안면도우체국)이 폭설을 뚫고 우편물을 배달하다 순직해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 조성한 추모공원에는 차 집배원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그의 추모비 옆에는 오 집배원과 1927년 전주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이시중 집배원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차 집배원의 동료 안병선(용인우체국)씨는 “마지막까지 국민의 재산인 우편물을 지키려 했던 그의 투철한 사명감이 죽어서라도 위로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우리 집배원들이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삶의 애환들을 품고 하늘에서 동료들을 지켜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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