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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로브스키 박은 꽃신, 소목장이 만든 아이패드 거치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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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07면

moum의 자기세트(왼쪽)

15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아직 개막식도 열리기 전인데 벌써 삼삼오오 구경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상철 총감독이 주제관 앞에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다. 가운데 놓인 두툼한 엿장수 가위와 검정 고무신이 정겹다. 싸리빗자루도 반가웠다. “여기 가운데가 우리 일상에서 보던 것, 이쪽이 일본 공예품, 저쪽이 유럽 공예품입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다 지금 쓰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식탁에 어떤 그릇을 놓고 쓰시나요. 플라스틱통은 아닙니까? 다 사라지고 있어요. 공예는 오브제가 아닙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죠.”

2011 공예트렌드 페어에서 본 것들

조각보이야기의 골무액자

곁에 있던 조희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정책연구 수석이 거들었다. “이 전시물은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와 그 후손들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조선의 미학이 담긴 문화를 일본 사람들이 발전시키고 있어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그 물건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는지 다들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해요.” 조 수석은 일본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싸리빗자루와 비슷했는데 손잡이가 ‘꼬부랑’ 스타일이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진화였다. “소비를 해야 발전이 있는데 우리는 쓰지는 않고 ‘복원’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예가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써니트리의 장신구(왼쪽)

이번 전시장 한가운데 아담하게 마련된 집은 그런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였다. ‘무형문화재 장인과 명장, 그리고 디자이너와의 만남’이라는 코너였다.
말꼬리 털로 만든 체가 은은한 조명 속에 빛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전통 마미(馬尾)체 장인 백경현씨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재우씨가 합작한 작품이었다. “이 체는 소나무, 솔뿌리 매듭, 대나무 못, 말총, 여기에 옻칠까지 모두 옛모습 그대로 만든 것입니다. 체를 사용하는 가정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마미체는 물때가 끼지도 않고 게다가 옻칠 덕분에 1000년을 가는 제품이죠. 이번에 박 작가와 함께 새로운 모습을 시도해 보았는데 관람객 반응이 궁금합니다.” 백 장인은 장인과 디자이너의 만남에 대해 긍정적이라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장인 + 장인 + 디자이너"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옻칠 장인이 있는데 아무 소반에나 옻칠을 합니다. 소목장이 만든 제대로 된 소반에다 칠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여기에 현대적 감각이 덧붙여질 때 보다 진전된 공예품이 나올 것입니다.”

정수화 중요무형문화재 113호 칠장과 모바일 디자이너 정승희씨가 합작한 나전칠기 휴대전화 케이스,김영만 제화분야 대한민국 명장 제1호와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씨가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넣어 만든 매죽굽 꽃신도 눈길을 끌었다. 한지를 오늘날 쓰임에 맞게 문화상품으로 만든 코너는 흥미로웠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디자이너단과 한지산업 발전에 관심 있는 멘토단이 6개월에 걸쳐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깻묵 피지, 옻칠 강판지, 쑥지, 황토지 등 다양한 질감, 편안한 색감의 각종 한지 100여 종이 새로운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자체들의 노력도 돋보였다. 슬로시티를 표방한 충남 예산군 대흥면 코너는 시골 장터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밀짚과 보리짚으로 만든 여치집을 비롯해 짚신과 복조리, 소쿠리 등이 정겹게 널려 있었다. 마을 노인 서너 분과 짚을 꼬아 ‘작품’을 만들었다는 김영재(81) 할아버지는 “이런 걸로 밥을 먹을 수 있겠나”라면서도 연신 질문을 던지는 관람객 덕분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표정이었다.

김영만 명장과 김영진 디자이너의 매죽굽 꽃신(오른쪽)

공예 브랜드화에 앞장선 지자체로는 전주가 대표적이다. 2006년부터 온(onn)이라는 브랜드로 장인과 디자이너의 만남을 추구하며 새로움을 추구해왔다. 합죽선을 이용한 부채등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고 소목장이 만든 아이패드 거치대는 깜찍했다. 전주문화재단 진효승 실장은 “실용성과 품격을 고루 갖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올해 처음으로 지역공예마을 컨설팅 사업에 선정된 경남 통영과 서울 종로구 코너도 전시장 맨 앞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진흥원 공공사업과 전민경 주임은 “좋은 원료가 나오는 곳에 좋은 기술이 생겼고 이것이 좋은 작품으로 나왔다는 논리에 따라 나전칠기로 유명한 통영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전복을 수집해 선별하고 세척한 뒤 나전칠기용으로 가공하는 섭패 기술 같은 것은 보존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에는 경공장(京工匠)이 있었다. 경공장이란 한양 왕실 소속 관청에서 필요한 제품을 만들던 곳이다. 조선 최고의 재주를 가진 장인들의 수공업 단지가 종로에 있었고 이곳에서 최고급 공예품이 생산됐다. 종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국대 디자인학부 오창섭 교수는 “동영상을 꼭 보시라”고 말문을 열었다. “장인들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니 얼마나 꼼꼼하던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밑에 전시된 것들은 어렵사리 빌려온 도구들인데 손때 묻은 도구가 장인의 삶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지요.”

한국 전통문화 지키기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예올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아름지기는 여자 배자를 바람벽에 걸어놓았고, 예올은 명품 브랜드 토즈와 함께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한 이현배 옹기장의 작품을 내놓았다.
이 밖에 홍보대사인 탤런트 지진희가 만든 백자를 비롯해 프랑스 공예협회의 감각적인 생활용품과 주얼리도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 전통 공예는 이렇게 현대를 숨쉬며 다시 몸을 추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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