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단적비 연수' 촬영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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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단적비연수 : 은행나무침대 2〉촬영 현장은 장관이었다. 지난달 26일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경남 산청군 차황면 황매산 꼭대기에 마련된 5천여평의 '화산마을' 세트장은 조명이 밤을 밝히고 원시시대의 자욱한 횃불 연기가 별빛 가득한 하늘 위로 피어 올랐다. 2백여명의 엑스트라가 깃발을 흔들며 질러대는 함성은 밤의 정적을 깼다.

강제규필름이〈쉬리〉 다음으로 11월쯤 내놓을 이 작품은 제작비 45억원이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국적인 모티브와 상상력을 결합해낸 이 영화는 전편〈은행나무침대〉의 주인공들이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여인의 야욕과 증오로 시작된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린 판타지 멜로물이다.

이날 촬영분은 화산족 마을에서 치러진 성인식. 수십명씩 두 패로 나뉜 마을 사내들이 차전놀이 하듯 단(김석훈)과 적(설경구)을 태우고 세를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20여채의 나무집과 마구간, 화산 모양의 굴뚝이 자리한 1천여m 산 정상의 세트장에는 주연은 물론 보조출연자 전원이 긴 머리 가발에 얼굴을 검게 칠한 원시 부족 차림으로 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은 저만치 서 있는 느낌이다.

처음 메가폰을 잡은 박제현(31)감독은 "움직임이 둔하다" "목소리가 그게 뭐냐" 며 소리를 지르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촬영도 이튿날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됐다.

TV드라마〈경찰특공대〉에 출연하느라 병원에서 영양제까지 맞고 있다는 김석훈은 "TV촬영은 급하게 진행되는데 영화는 충분히 몰입할 수 있어 매력적" 이라고 말한다. 검게 칠한 얼굴에 긴 가발을 쓰고도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그는 '비' (최진실)와 사랑에 빠지는 '단' 역을 맡았다.

〈박하사탕〉으로 유명세를 탄 '적' 역의 설경구는 친구의 연인인 '비' 를 사랑하는 비운의 인물. 그러나 그는 "이번 역에 몰두하기 위해 다른 사극이나 비슷한 류의 영화는 보지도 않는다" 며 자신의 역에 애착을 보인다.

촬영장에서 단연 시선을 끈 인물은 〈쉬리〉의 여전사 김윤진. 촬영 관계자들에게 모기를 쫓는 스프레이를 뿌려줘 인기를 독차지 했다. 맡은 역은 화산마을 공주로 '적' 을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에서 블랙코미디 장르의 영화에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인 그는 "대본을 받자마자 '연' 에 푹 빠졌다" 며 "일본 진출은 촬영이 끝난 뒤 생각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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