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MLB 잡학사전 (8) - 외야수의 어시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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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도 어시스트가 있다?

흔히 축구, 농구, 아이스 하키 등에서 쓰이는 어시스트의 개념은 '골을 넣는데 준 직접적인 도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야구에서의 어시스트는 공격이 아닌 수비시 사용되는 용어이다.

메이저리거들의 수비기록을 들쳐보다 보면, 풋아웃(Putout)과 어시스트(assist)란 용어를 접할 수 있다. 두 용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경기의 한 장면을 그려보자.

1사 만루의 위기상황. 타석에는 강타자 새미 소사가 들어섰다. 박찬호는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몸쪽 낮은 직구를 던졌다. 소사가 친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가는 땅볼. 소사의 타구는 알렉스 코라(유격수)-마크 그루질라넥(2루수)-에릭 캐로스(1루수)로 이어지는 깔끔한 6-4-3 병살플레이로 연결됐고, 박찬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운드를 내려 왔다.

장면을 다시 돌려보자.

1. 소사의 타구를 잡은 유격수 알렉스 코라가 공을 2루수 그루질라넥에게 토스, 그루질라넥은 2루 베이스를 찍어 1루주자를 아웃. ‥ 아웃카운트를 잡는데 도움을 준 코라에게는 어시스트, 직접적으로 아웃을시킨 그루질라넥에게는 풋아웃이 기록.

2. 그루질라넥은 다시 공을 1루에 던졌고, 타자주자 아웃. ‥ 아웃카운트를 잡는데 도움을 준 그루질라넥에게는 어시스트, 공을 잡아 아웃시킨 캐로스는 풋아웃이 기록.

따라서 이번 장면에서 코라는 1개의 어시스트, 그루질라넥은 풋아웃과 어시스트 각각 하나, 캐로스는 풋아웃 1개를 얻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풋아웃이란 '직접적인 아웃카운트를 올리게 된 행위'를, 어시스트란 '아웃카운트를 올리는데 도움을 준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풋아웃은 1루수가, 어시스트는 유격수가 가장 많이 기록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 일본야구에서 쓰는 용어인 자살(自殺)과 보살(補殺)을 차용해 쓰기도 했다.

외야수의 경우 플라이 볼을 잡아 아웃을 처리하게 되면 풋아웃이 기록된다. 그렇다면 외야수가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는 경우은 어떤 상황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경기의 한 장면을 살펴 보자.

박찬호가 다시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타석에는 여전히 새미 소사. 박찬호는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몸쪽 낮은 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공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가운데로 몰렸고, 소사의 타구는 우익수 정면으로 날라갔다.

3루주자의 언더베이스가 가능한 상황. 그러나 다저스 우익수 션 그린은 빨래줄같은 송구로 3루주자 에릭 영을 홈에서 잡아냈다.

소사의 타구를 잡아내 직접 아웃카운트를 기록한 션 그린에게는 먼저 풋아웃이 기록된다. 그리고 에릭 영을 홈에서 잡아내는데 도움을 줬으므로 어시스트도 하나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외야수의 어시스트는 멋진 송구로 언더베이스를 하는 주자를 잡아낸다던가, 귀루를 하는 주자를 잡아내는 상황에서 기록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어시스트는 외야수의 수비능력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외야수의 어깨가 약해 상대팀 주자들이 마음놓고 그라운드를 휘졌고 다닐 수 있다면, 그것 팀에게 엄청난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야수의 어시스트로 인한 '저격'은 경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 상황을 많이 연출하기 때문에 더욱 '고평가' 받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소문난 '저격수'들은 강견을 자랑하는 라울 몬데시(토론토), 호세 기엔(템파베이), 블라디미르 게레로(몬트리올) 등이 있으며,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 래리 워커(콜로라도), 션 그린(LA), 바비 어브레유(필라델피아), 저메인 다이(캔자스시티), 앤드류 존스(애틀란타)는 송구의 정확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단순히 어시스트의 개수를 놓고 그 선수의 송구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 금물. 그 단적인 예는 지난 해의 알버트 벨(볼티모어)와 바비 어브레유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미 소문난 대로 최악의 수비력을 갖고 있는 앨버트 벨은 지난 해 1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반면 강견에다 정확성까지 갖춰 '최고의 저격수'로 평가를 받고 있는 어브레유는 단 8개의 어시스트만를 올렸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주자들이 최고의 어깨로 소문난 어브레유 앞에서는 뛰기를 주저하지만, 벨의 경우는 만만하게 생각하고 무리한 베이스러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둘의 차이는 '어시스트를 올릴 수 있는' 기회의 차이이다.

모든 포지션이 다 중요하겠지만 특히 어시스트 능력이 중요한 포지션은 우익수이다. 이는 2루주자의 3루 언더베이스와 안타시 1루주자가 3루까지 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m 이상을 빨래줄 같이 날라가는 몬데시의 송구는 빅맥의 150m 짜리 홈런에 버금가는 짜릿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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