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천, 2004년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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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박근혜(얼굴) 전 대표는 1일 중앙일보·JTBC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공천 방식과 관련, “힘 있는 몇몇, 어떤 누가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납득할 투명하고 개방된 제도로 공천하는 게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최근 한나라당에서 ‘공천 개혁’ 논란이 촉발됐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이 발언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칭한 “힘 있는 몇몇이 마음대로 한” 공천이란 일차적으로 2008년 공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이재오·이방호 의원 등 친이명박계 핵심이 주도했다. 그 결과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됐고, 이는 지금까지 내려오는 계파 갈등의 원인이 됐다. 2000년 총선 때도 당시 이회창 총재가 김윤환·이기택씨 등 비주류를 제거해 파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2일 “박 전 대표는 자신이 대표를 맡아 치렀던 2004년 총선 때의 공천 결과에 대해선 나쁘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12월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으로 존폐 위기 상황을 맞았다. 당시 최병렬 대표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위해 자신과 가까운 김문수 의원을 공천심사위원장에 기용했다. 그러나 최 대표 자신도 인적 쇄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공심위가 최 대표를 비롯, 60여 명의 현역의원·당협위원장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킨 것이다. 공심위가 그 같은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당 지도부가 2004년 ‘서청원 석방결의안’ 통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악수를 두면서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그해 3월 새로 취임한 박근혜 대표도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비례대표 공심위원장에 임명한 것 외엔 비례대표 공천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선거 지원 활동에 주력했다. 오히려 비례대표에선 ‘박세일 사단’이 형성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 친박계 의원은 “결국 박 전 대표의 발언은 홍준표 대표가 자기 욕심 부리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공천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 아니겠느냐”며 “내년 공천 때도 박 전 대표가 직접 공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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