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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으면 음식, 삭혀 먹으면 약 … 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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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에서 숙성한 홍어의 몸통(왼쪽)과 날개 부위 살. 저온에서 열흘 정도 삭힌 홍어가 가장 많이 팔린다.

찬바람이 불 때 생각나는 것이 홍어다. 겨울에 들어서는 길목 ‘홍어 로드’를 찾아다녔다. 어선 7척이 서로 경쟁하듯이 홍어를 건져 올리는 전남 신안 흑산도, 언제 가도 쪼그려 앉아 홍어 손질하는 아낙네가 있는 목포 선창, 거리에서 홍어 삭히는 냄새가 진동하는 나주 ‘홍어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홍어를 찾아 남도를 사나흘 헤매고 다녔더니 옷에 홍어 냄새가 짙게 배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 홍어는 역시 흑산도

흑산도 홍어

지난달 22일 흑산수협 위판장. 홍어 300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총 중량 2t 남짓. 홍어 흉년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그나마 괜찮은 어획량이다. 암컷 1번(8.2kg 이상) 홍어의 경매 낙찰가는 45만원. 1주일 전에 비해 떨어졌지만, 그래도 비싼 편이다.

 올겨울 흑산도엔 홍어가 귀하다. 지난달까지 흑산수협을 통해 팔려나간 홍어는 약 92t, 지난해 같은 기간 157t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해 1kg에 3만∼4만원이었던 홍어가 올해는 5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11월 기준 암컷 1번 낙찰가는 45만∼55만원, 이놈이 뭍에 올라가면 60만원까지 가격이 뛴다. 이번 가을부터 유지되고 있는 가격이다. 그렇다고 주문량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중매인 박학준(53)씨는 “60만원이 넘어가도 주문은 꾸준하다”며 “홍어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격을 안 따진다”고 말했다.

홍어의 날개 살. 홍어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흑산도 예리 선착장 옆으로 홍어 도·소매점이 자리 잡고 있다. 위판장에서 실려온 홍어는 대부분 냉장실에 들어가지만 일부는 곧바로 해체된다. 갓 잡은 홍어는 살이 차지다. 날 홍어를 먹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갓 잡은 쇠고기 맛이 난다”고 한다. 또 겨울바다에서 올라오는 싱싱한 홍어에는 별미가 들어 있다. 홍어 간, 즉 ‘애’다. 홍어 애를 먹으려고 홍어를 잡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큰놈의 경우 쓸개까지 합쳐 애의 크기가 1kg에 육박한다.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은 싱싱한 애 한 점은 별미 중의 별미다.

 흑산도에서는 싱싱한 홍어를 바로 썰어 먹는다. 20년 넘게 홍도 인근에서 홍어를 잡고 있는 한성호 이상수(46)씨는 “이맘때 잡히는 홍어가 차지고 맛있다”며 “입안에 들어가면 착 감기면서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말했다. 수협 위판장 경매는 1주일 한두 차례 열린다. 이른 아침 칼바람을 맞고 진행되는 경매도 여행자에게는 좋은 구경거리다. 소매점에서 작은놈은 10만원대에서 구할 수 있다. 씨알 굵은 전복도 7만∼8만원이면 된다.

●흑산도 여행정보 겨울 흑산도는 한갓지다. 여름과 달리 단체 관광객이 적어 맘껏 노닐 수 있다. 예리 마을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 일주도로를 달려보시라 권한다. 사리마을에 가면 흑산도에서 생을 마감한 정약전의 자취도 찾을 수 있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 1일 4회 있다. 2시간 정도 걸린다.

# 숙성 홍어의 본산 나주

전남 나주시 영산동 홍어의 거리. 영산강이 바라다보이는 100여m 아스팔트 길에 ‘○○홍어’라고 적힌 간판이 즐비하다. 외국산 홍어를 해동해 삭히는 홍어 가공업체가 줄잡아 40∼50군데에 이른다. 이곳에서 숙성된 홍어는 전국 팔도로 팔려나간다. 연간 1500여t에 달한다. 숙성 홍어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홍어는 전라도 별미에 머물렀다. 지금은 전국은 물론이고 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영산홍어 강건희(62)씨는 “2004년 대형마트에 진공 포장된 홍어가 납품되면서 영산포 홍어가 전국구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 영산포 사람들은 흑산도 홍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외국산을 가공한 것이어서 가격은 흑산도 홍어보다 싸지만, 유통량은 흑산도에 비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영산포 홍어전문점에서 내놓는 홍어 정식. 삼합을 비롯해 홍어애탕 등 홍어의 거의 모든 부위를 맛볼 수 있다.

 홍어는 ‘그냥 먹으면 음식이지만, 삭히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영산포에서는 아직도 ‘애 낳은 산모에게는 홍어를 먹였다, 창을 하는 사람들은 홍어로 목을 다스렸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삭힌 홍어는 몸에 좋다는 뜻일 게다. 강씨가 말하는 좋은 삭힌 홍어의 맛은 다음과 같았다.

 “입 안에서 살살 돌려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야 합니다. 콧구멍과 목구멍이 아릿할 정도로 톡 쏘는 맛이 나야 하고, 뼈를 오독오독 씹을수록 목구멍에 향취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삭힌 홍어의 일관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장 시설이 필수다. 그리고 저온 숙성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뼈와 살이 부드러워진다. 숙성에 알맞은 온도는 5∼10도, 계절에 따라 7∼10일 정도 삭힌다. 영산포에는 홍어 전문 음식점이 네댓 군데 있다. 홍어정식은 1인 2만∼4만원이다.

 영산강 하구에 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 영산포는 큰 포구였다. 홍어의 거리가 있는 영산포 일대는 지금도 일제 때 지은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당시 나주의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의 집이 대표적이다.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규모가 큰 저택이다. 폐가처럼 방치돼 있어 아쉽다.

●영산포 여행정보 영산포 홍어의 거리 앞으로 영산강이 흐른다. 4대강 사업으로 자전거도로와 황포돛배 등 여러 레저 공간이 들어섰다. 황포돛배는 나주시 공산면 다야뜰 선착장에서 오전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영산포 홍어의 거리는 KTX 나주역에서 아주 가깝다. 자동차로 가면 광주를 거쳐 13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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