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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다시 도마에 오른 주한미군 지위협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미 관계에 악재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주둔군 지위협정(SOFA)
상의 불평등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고 매향리 美 공군 사격장 파문 등으로 인해 고조된 불만이 가라앉기도 전에 주한미군이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포르말린)
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사건이 일어났다.

주한미군의 독극물 무단방류는 SOFA 규정의 불평등성에서 비롯됐다는 인식도 이같은 불만 고조의 커다란 이유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주한미군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이 악재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한동(李漢東)
총리도 최근 “SOFA는 애초부터 불평등한 협정”이라고 말하고, “환경오염·농산물 검역문제·미군기지내 한국인 근로자 문제를 의제로 제기, 반드시 관철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2,14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SOFA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SOFA 개정 국회결의안을 추진키로 했다.

미군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오키나와의 주일미군이 14세 소녀를 성추행한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현지 주둔 미군 책임자와 미국 총영사가 일본식으로 절까지 해가며 정중히 사과하기도 했다.

주한·주일 미군에 대한 현지 주민의 반감이 높아짐에 따라 美 정부는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한국·일본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둔지 미군의 지위가 흔들리면 미국의 대외전략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략적 고려를 하더라도 지상군 중심의 주한미군과 해·공군 위주의 주일미군이 함께 있어야 이 지역 미군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라도 문제가 생겨 철수해야 할 지경에 이르면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배치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둘러싼 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되자 중단됐던 SOFA 개정 협상을 재개했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11일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안보통일포럼’ 초청강연에서 “미국 협상단이 다음달 2일과 3일 한국을 방문해 SOFA 개정협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SOFA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체결돼 67년에 정식 발효된 협정이다. 지난 91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한차례 개정된 일이 있다. 당시 합의의사록과 개정양해사항 등 2개 부속문서가 채택됐으나 이 문서는 협정의 효력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전반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후 한·미 두 나라는 95년 11월부터 96년 9월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SOFA 개정협상을 벌였으나 미국측의 일방적인 결렬 통보로 중단됐다.

당시 미국측이 무성의하게 협상에 임했다가 일방적으로 협상 파기를 선언했다는 것이 한국측 입장이다.
SOFA 문제는 지난 4년간 휴지 상태에 있다가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주한미군을 둘러싼 논의가 재개되고 시민단체들이 SOFA 개정을 촉구하면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그 배경에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발생했던 미군 사병의 한국인 노파 살해 사건과 지난 1월 경기도 파주 폭탄테러설에 따른 시민 피신 사건, 매향리 사건, 서울 용산 미군부대내 호텔시설 증축 등이 연쇄적으로 터진 것도 작용했다. 이로 인해 한국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이상기류를 인식한 미국측은 지난 5월 31일 보스워스 대사를 통해 SOFA 개정에 관한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예민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체 논평을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측 협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스워스 대사의 제안 내용을 공개하기가 난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환경·노무·주한미군 시설을 포함해 형사재판 관할권까지 협상대상의 폭을 넓게 잡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워스 대사는 형사재판 관할권 문제만 협상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 광범한 사안을 다루면 합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보스워스 대사의 부연설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더구나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였던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법원 확정판결 시점에서 검찰의 기소 시점으로 앞당기는데 동의했으나 대신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즉 경미한 (6개월 이하의 형을 받는)
사건에 대해서는 미군이 재판권을 보유하고 피의자 대질 신문권을 보장해줄 것과 한국 법원에 재판권을 넘기는 사건 대상을 중범죄로 제한하고 중범죄 규정을 위한 범죄 종류 리스트 작성 등을 요구했다.

이들 조건은 한국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더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은 또 있다. 즉 미국은 ‘미군 피의자의 신병이 한국측에 넘겨진 이후 법적 권리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면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측에 피의자의 신병인도를 요청할 수 있고, 한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관련 규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조항 삽입을 요구한 것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측 협상안은 ‘안’에 불과하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밝히면서도 지난 6월 초부터 송민순(宋旻淳)
외교부 북미국장을 중심으로 국방부·법무부·환경부 등 관련부처와 연쇄회의를 갖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결국 다음달 2일 4년만에 재개되는 SOFA 개정협상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SOFA 협상과 관련, 환경문제의 심각성도 주목된다. 주한미군 용산기지의 독극물(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사건도 SOFA 규정엔 제재를 할 수 있는 명확한 조항이 없다. 미국이 유럽 및 일본과 맺은 SOFA 규정에는 환경오염 제거비용 부담과 환경정보 공개 등 엄격한 환경관리 규정이 포함돼 있다. 반면 한국과의 SOFA 규정에는 아예 환경이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조차 없다.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해 상용되는 포름알데히드에 대해 주한·주일 미군 모두 화학적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독성을 제거한 뒤 버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은 환경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감시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SOFA 협상에서는 또 미군기지내 한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해온 문제점도 다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관세 면제·검역 관련 조항 등도 개정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SOFA 개정과 사격장 등에 관한 한·미간 시각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한·미 동맹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평등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장 큰 현안은 美 공군 전용사격장인 매향리 사격장 문제다. 경기도 화성군 매향 1·5리의 사격장은 주한 美 공군이 지난 50년간 사용해온 유일한 기총사격 훈련장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8일 美 공군 A10 지상공격기가 매향리 앞바다의 농섬(폭격훈련장)
에 폭탄을 연쇄투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에서 비롯됐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분출했고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사격장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소음의 원인이 돼온 내륙의 매향 1·5리 기총사격장(29만 평)
을 잠정적으로 폐쇄하고 표적 위치를 인근 농섬 부근에 조성되는 인공섬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했다. 인공섬 건설에 1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그동안 美 공군은 한국군 사격장을 훈련장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인공섬 구상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어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중앙일보 군사전문위원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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