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노예의 성' 백악관

중앙일보

입력

미국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 자리잡은 장엄한 국회의사당과 대각선으로 대칭을 이루는 백악관은 미국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의 으뜸가는 상징물이다.

매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배운다.

그런데 이 두 건물을 지을 당시 수백명에 이르는 흑인 노예들이 동물 같은 대우를 받으며 강제 노역에 동원됐던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알려지면서 미 의원들 사이에서 작은 참회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건축공사는 노예해방 선언 이전인 1790년대 초에 시작됐고 노예들은 1860년대 중반까지 힘든 노역을 담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노예들은 오직 토머스.찰스.해리.제리 같은 이름으로만 불렸고 ' 노동 대가는 모두 주인에게 지급됐다.

이같은 사실은 의사당 관리인 사무실에서 건축 당시 미 재무성이 노예 소유주들에게 지급한 약속어음이 발견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면서 냉소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인디펜던트와 더 타임스는 각각 '한달에 5달러를 받은 노예에 의해 지어진 의사당과 백악관' '노예노동 위에 쌓아 올려진 자유의 성전' 이란 제목을 달기도 했다.

미국 역사가들 사이에선 더욱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흑인들이 세운 하워드대학 러셀 애덤스는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제퍼슨의 몬티첼로 저택도 흑인 노예가 지은 것 아니냐" 고 묻고 있다.

그는 "점잖게 자유를 토론했던 이들도 노예는 단지 동물이나 동산(動産)으로 여겼다" 고 꼬집었다.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의사당에 그런 역사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안 와츠(오클라호마.공화)와 존 루이스(조지아.민주)하원의원은 최근 노예들의 공헌과 명예를 기리기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법안은 의회가 두 건물 건축에 끼친 노예들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와츠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된 뒤 의사당 앞뜰에 흑인 노예 기념비가 세워지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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