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저녁값 빼 무상급식 쓴다는 중랑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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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중랑구(구청장·문병권) A고의 학생 220명은 주중 5일간 학교 식당에서 무료로 저녁을 먹는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가 저녁을 제대로 챙겨주기 힘든 상황인 학생들이다. 이들의 저녁값은 중랑구가 2009년 시작한 ‘중·고생 방과후 석식비 지원사업’ 예산에서 충당된다. 학교에서 무료로 저녁을 제공해야 할 학생들을 조사해 구청에 신청하면 한 끼당 3100~3300원이 지급된다. 중랑구에서 이렇게 저녁값 지원을 받는 중·고생은 1780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들은 내년부터는 무료 저녁을 먹지 못할 처지가 될 것 같다. 내년도 저녁값 지원을 위한 예산 6억여원은 모두 초등학생과 중 1학년의 무상급식(점심) 예산으로 쓰일 예정이다.

 재정 상황이 열악한 중랑구가 내년부터 확대 실시되는 무상급식 예산을 달리 확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중랑구는 서울시내 25개 구청 중에서 재정자립도(31.5%)가 23위다. 중랑구의 유경애 학교지원과장은 “다른 부문에서도 이미 사업비를 줄였기 때문에 달리 돈이 나올 곳이 없었다”며 “구의회에서 예산안이 최종 확정되면 각 학교에 석식비 지원 중단을 통보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랑구 내 초등 1~6학년(2만115명)과 중 1학년(3870명)에 180일 동안 점심 급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약 106억원이다. 무상급식 조례에 따라 중랑구가 분담해야 하는 돈은 전체의 20%인 약 22억원이다. 중랑구는 이 돈을 석식비 지원사업 예산 6억원과 각종 학력신장 프로그램 예산 중 16억원을 전환해 마련키로 결정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격이다.

 현재 구의회에서 심의 중인 중랑구의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44억원 줄어든 3248억원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산세 등 구 수입이 감소했고 올해 840억원이던 서울시 교부금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렇게 살림은 빠듯한데 사회복지 예산 비중은 전체 예산의 43.7%에서 47.3%로 오히려 늘었다. 이에 따라 중랑구는 일반운영비와 사무관리비를 각 20%씩 삭감하고 사업도 대폭 정리했다.

 중단되는 건 저녁값 지원뿐이 아니다. 방과후 돌봄 교실 등 중랑구가 추진해 온 각종 학력신장 프로그램도 대부분 중단될 위기다. 학교 교육환경 개선 사업비도 올해 60억원에서 내년엔 12억원으로 대폭 축소된다.

 조동근(경제학과) 명지대 교수는 “형편이 좋은 초등학생에게까지 점심을 무상 제공하게 되면서 저녁값을 꼭 지원받아야 하는 학생의 몫이 줄게 됐다”며 “구청별 상황에 맞게 예산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선·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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