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역 시장 주도권 잡기 나선 마이크로소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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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BT는 조심할 것. 시내에 거대한 괴물 출현! - 마이크로소프트가 영국의 광대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 가운데 경쟁사들과 반독점 지지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는 미국 법무부와 벌였던 한 차례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긴 했지만 단호하게 딛고 일어나 광대역 시장에서 한 몫 잡기 위해 일어섰다.

비록 EC가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케이블 시장에서 발판을 얻어내려는 MS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를 장악하려는 MS의 계획은 현재의 반독점 전투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MS는 정부와의 광대역 결투 1회전에서 얼굴에 억지스런 미소를 띄며 빠져 나왔다. 지난 11일자로 MS는 영국 케이블 업체인 텔레웨스트(Telewest)의 지분 22.98%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MS가 원했던 만큼의 양에는 못 미치지만 광대역 인터넷 시장 장악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IDC의 텔레콤 애널리스트인 니키 월튼은 MS의 텔레웨스트 지분 소유는 광대역 시장에서 영역 다툼을 초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케이블과 DSL 운영자 간에 분쟁이 발생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이제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와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 이하 BT)이 접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니키 월튼은 “이번 협상으로 인해 MS와 BT는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광대역에서는 케이블 업체들이 BT에 비해 훨씬 더 이상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븀(Ovum)사의 애널리스트인 해닝 드랜스펠드는 MS가 과거 PC와 인터넷 브라우저 분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광대역 각축장에서도 시장 독점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케이블 모뎀과 ADSL간의 경쟁에서 케이블이 얼마나 선전할지 점칠 수 없지만 만약 케이블이 승리한다면 유럽에서 MS는 대단한 위세를 떨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며 “시장 독점에 대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MS가 시장을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덧붙였다.

케이블, DSL, 인공위성

애널리스트들이 일반 가정에 광대역을 끌어들이는 경쟁에서 ADSL, 케이블 모뎀, 인공위성 중 어느 것이 승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분석에 열중하고 있을 때 MS는 무관심을 표명했다.

MS 네트워크 솔루션의 브루스 린 그룹 매니저는 MS를 “완전한 네트워크 회의론자”로 표현하며 자사가 그동안 케이블, DSL, 인공위성 등에 투자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누군가 가정에 2MB를 전송할 방법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우리도 광대역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다수 평론가들은 MS가 이미 텔레웨스트의 주 경쟁사인 Ntl사에 대해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MS가 케이블 모뎀 기술에 승부를 걸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초 MS는 텔레웨스트 지분을 더 많이 차지하려 눈독을 들이다가 AT&T의 자회사인 리버티 미디어 그룹(Liberty Media Group)과 함께 텔레웨스트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EC의 조사가 시작됐다. EC는 조사결과 MS에게 떠오르고 있는 영국의 디지털 케이블 산업에 대한 기술을 결정하도록 허용하면 서비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소지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MS는 한 걸음 물러서며 리버티와의 관계를 정리했고, 텔레웨스트에서 자사 지분을 제한하는데 동의하면서도 MS가 그 이상의 지분을 원했다는 주장은 오해라고 말했다. 린은 “23%가 정확히 우리가 원했던 지분”이라며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대주주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강력한 유럽의 광대역 업체에 강도 높은 투자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MS 의도 파악 시간 너무 짧았다

드랜스펠드는 EC가 과연 이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을 엄정하게 조사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는 “MS가 쉽게 조사를 벗어난 것에 놀랐다. MS가 지분을 전혀 갖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EC가 MS의 의도를 검토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을 소요했다는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또 “EC는 디지털 TV 접속 시장의 잠재적 지배력은 주시했지만 일반적인 광대역 시장은 살펴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법무부와의 소송을 겪고 난 MS는 분명 어느 정도 콧대가 꺾인 채 추가 조사 준비를 했지만 오만한 모습은 여전했다. 린은 “앞으로도 항상 조사 대상으로 남아 있겠지만 향후 조사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IDC의 월튼은 EC가 광대역 시장에서 MS의 부당한 독주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EC는 MS가 군침을 흘리던 경쟁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 훼방놓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MS의 텔레웨스트 공동지분 보유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분을 축소함으로써 시장 독식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MS는 자사가 광대역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어느 한 기업이 광대역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기업이 모두 제공할 수는 없다”는 게 린의 논리다.

광대역의 미래

광대역은 앞으로 떠오를 이슈다. 둔하고 불만족스런 인터넷을 빠른 속도와 더불어 풍성한 비디오가 구현되는 환상의 세계로 변모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PC만을 통한 인터넷 접속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인터랙티브 TV가 광대역 혁명을 이끌 숨겨진 공신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밝혀진 것으로 조사 대상자의 1/3이 TV를 통한 인터넷 접속을 희망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에서 모두 후발주자인 MS는 새롭게 떠오르는 인터랙티브 TV 시장에서 핵심 주자로 올라서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다.

린은 MS의 광대역 계획을 80년대와 90년대의 PC 시장에 대한 지배권 싸움에 비유하고 있다. 그는 PC 시장의 한계는 수용 능력(capacity)의 제약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며 결국 시장 확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인텔과 손을 잡았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제 수용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 것은 광대역이 됐고 케이블 업체들이 MS의 새로운 인텔 역할을 맡고 있다.

드랜스펠드는 윈도우 CE 운영체제를 셋톱박스에 탑재하는 것이 MS가 케이블 업체들과 제휴하는 주 이유라고 설명했다.

MS는 “우리의 목표는 5년 내 모든 사람이 광대역을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광대역 시장에 기술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 원한다”며 여느 때처럼 미래 목표를 축소해 표현했다. BT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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