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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10시간] 전지현

중앙일보

입력

이 여름, 차거운 시냇물에 한 발 푹 담그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맑은 물 속 송사리의 율동을 보며, 강아지풀 사이 찌르르 벌레소리를 들으며 마주 앉는다면 진솔함은 더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스타와 10시간' 을 마련한다.

10시간에는 두 차례의 식사란 의미가 담겨있다. 바싹 그들에게 다가가 독자들에게 깊은 내면의 풍경까지 드러내고 싶은 욕심에서다. 매주 대중문화 스타들의 새 면모를 전한다.

#1소나기가 내린 양수리

"강하면 뭐가 생각나요. "
"놀고 싶어요."
"뭘하며."
"수상스키."
"탈 줄 알아요?"
"그럼요. 중학교 때부터 탔죠."

대개 두 마디를 넘지 않는 답이지만 막힘이 없다. 강물에 마음을 놓은 듯 한데도 말은 이어진다. "족히 1㎞는 돼 보이죠. 수영으로 건너갈 수 있는데. 버터플라이로 멋있게. "

강가로 나간 건 해질녘이었다. 영화 '시월애' 포스터 촬영을 마친 후였다. 그는 하얀 면티, 무릎에 자락이 닿일 듯한 반바지 차림이었고 보라색.연두색 꽃이 달린 꽃신 슬리퍼를 신었다.

낮에 소나기가 내린 수면 위로 물안개가 가득 피어 올랐고 눈앞의 강가에는 간혹 소형 모터보트가 밀어낸 파도가 찰랑거린다.

"한강 오다보면 모텔.음식점.별장같은거 많잖아요. "
"안타깝죠. 자연을 버리니까. "

'모르겠어요' 정도의 답을 기대한 것은 나쁜 선입견이었다. 강이 좋다고 했다.

서울 토박이라 한강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한강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강은 보듬고 싶은 구석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전날 서점에 들러 산, 표지 디자인이 산뜻 한 벤야민 레버트의 장편소설 '크레이지' 를 선물로 건넸다.

그도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설마 주는 것일까하는 눈초리로 배시시 웃는다. 정말이라고 하니 다시 뺏을까봐 감추기라도 하듯 차속으로 달려가 책을 챙겨둔다.

#2영화 시월애(時越愛: 시간을 초월한 사랑)

삼성 '윙고' 와 '마이젯' CF로 n세대 요정으로 떠오른 전지현(19). 그는 CF스타에서 영화배우로의 자리매김에 여념이 없다.

진선여고 1학년이던 97년 잡지 '에꼴' 의 표지 모델도 데뷔한 그는 고2때 SBS 〈내 마음을 뺏어봐〉로 TV에 등장한 뒤 〈해피 투게더〉에서 주인공 이병헌의 막내 동생 윤주역으로 주목을 끌었다.

요즘 그는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 1스튜디오에서 살다시피한다. 두번째 영화 〈시월애〉 촬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영화 〈시월애〉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남녀가 우연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는 얘기로 상대역은 이정재다.

'데이트' 를 하던 날 전지현은 오전 8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대사 없이 소파에 기대 앉은 모습만 찍는 날이었다. 한 컷의 촬영이 오후 2시를 넘어서야 끝났으니 꼬박 6시간이 걸렸다. 대사보다 이미지 전달이 중요한 장면이라서 조명을 맞추는데만 3시간이나 걸렸다.

"매일 이래요. 기다리면 짜증나죠. 처음엔 그랬어요. 근데 생각이 달라졌어요. 한 장면이라도 잘 찍어주실려고 그러신다는 걸 알았죠. 요즘은 감독님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지현이는 어린애 같아 보이지만 아주 성숙한 연기를 해요. 차분한 캐릭터가 어울리죠. 사실 광고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요" 라고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은 말한다.

전지현은 이 영화를 통해서 섹시하고 발랄한 이미지에서 제 본래 모습인 차분함을 많이 찾으려고 한다. 배우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싶어서다. CF모델보다는 영화배우, 그게 가슴 가득한 그의 소망이다.

#3이미지와 실체

"사람들과 어울릴 땐 한 없이 밝다가도 혼자 있으면 그런 면은 곧잘 사그라지곤 한다." (정준모 매니저)
"순진하고 바보같으면서도 사랑스럽다. 착한 여우다." (강영호 사진작가)

화면이 만들어낸 것은 허상일 수 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확연히 달라지는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을 넣었다 금방 뺐다. 까르르 웃었다. 시무록했다. 섹시했다. 발랄했다. 무표정했다. 그 어느 표정도 힘이 들지 않는 듯하다. 타고난 배우여서 그럴까. 사랑은 일생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대를 끊임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보다 큰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그가 좋아한다는 존 그레이의 사랑의 잠언록 중 한 귀절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여러번 했다.
"일할 땐 주위 분들이 어떻든 내가 잘해야 관계가 좋아지고 마음이 편하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발랄한 이미지 이면에 숨겨진 전지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4스파게티와 낙지전골

스파게티를 시키면 단무지가 나온다. "단무지가 너무 좋아요. 하도 좋아해 고등학교 때 반찬으로 싸갔죠, 얘들이 썰렁하게 쳐다 보더군요. 그때 왕따 당하는 줄 알았어요. " 묻지도 않았는데 대뜸 아픈 단무지의 기억을 들려준다.

강가에서 서울로 나오는 길에 차를 한잔 하러 카페에 들렀다. 어둑어둑 해졌다. 메뉴판을 보더니 "배고프다" 며 오무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집엔 오무라이스가 없었다. 그래서 스파게티였다.

창으론 강이 내려다 보이고 베르디 오페라 '카르멘' 이 음악으로 깔리는 분위기 있는 카페였다.

"이 음악 참 기분 좋아요" 라며 무슨 음악인지 금방 알아채더니 마늘빵에 스파게티를 맛있게 올려먹는다. 이내 마늘빵이 떨어졌다.

"아저씨, 마늘빵 '리필' 돼요." "안되는 데요. " 그 아저씨의 뒤를 반히 보며 짓는 '그걸 좀 더 안주냐' 는 표정은 TV에서 본 현란한 전지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2시쯤 점심을 먹었다. 양수리 촬영소 근처 한식집이었다. 그는 낙지전골을 시켰고 파전을 함께 했다. 평소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고 했지만 그날따라 긴장을 했나. 파전만 그럭저럭 먹더니 낙지전골엔 영 손이 안간다.

그는 한마디 한다. "이 집 낙지전골 맛없다."

#5일문일답

-10년 뒤의 모습은.
"아마 배우로서 멋진 것을 이루고 가정 주부가 돼 있을 것 같다.일을 계속하면 아이들이 외로워할 것 같다.그건 안된다."

-친한 연예인과 모델로 삼는 선배가 있다면.
"장혁 오빠.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대화를 나눈다.편한 사람이다.심은하 언니가 맘에 든다."

-학교 생활(동국대 연극영상학부 1년)은.
"첫 성적이 나왔는데 영화 촬영 탓에 2과목이나 F직전까지 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학생이니까 공부가 우선이다.다음부터는 그런일 없을 것이다.대학원을 가고 싶다.배우의 입장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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