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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마스코트 순둥이

중앙일보

입력

북촌 골목길을 한참 걸어올라가자 작은 정원 뒤로 한옥집 하나가 나타났다. 입구에는 ‘개조심’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릎 높이의 삽살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손바닥을 핥았다. 두 다리로 번쩍 일어서니 기자의 목부분까지 닿았다. 다섯살 암컷인 개의 이름은 ‘순둥이’. 서울시장 선거기간, 박원순 캠프의 마스코트로 불리던 견공이다.

“우리 순둥이가 안철수 원장 다음으로 많은 표를 몰아줬다고 하네요.”

순둥이의 주인 현준희(58)씨가 웃으며 말했다. 3일 현씨를 그가 운영하는 서울 계동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순둥이와 함께 만났다.

현씨는 박 시장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현씨가 박 시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시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10년 전부터 삽살개를 기른 그는 선거를 앞두고 캠프에 “박원순 후보가 순둥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벽보로 쓰면 호감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제안했다. 7년동안 삽살개와 함께 주말마다 인사동길을 산책하며 인기를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혹시 선거법에 위반될까봐 선관위에도 문의했다. 선관위는 “개는 소품으로 볼 수 있어 후보와 함께 찍어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씨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 13일 광화문에서 열린 박 시장의 캠프 출정식에 등장해 스타가 됐다.

2주간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현씨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 신촌ㆍ홍대ㆍ건대 앞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투표에 참여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옆에는 항상 순둥이가 있었다. 선거 운동원이 아닌 자원봉사자 신분의 현씨는 피켓이나 어깨띠를 매고 특정 후보를 위한 유세를 할 순 없었다. 대신 순둥이의 ‘미모’를 보고 몰려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투표로 말하라”고 했다. 꼭 박원순 후보를 찍으라고 하지 않아도 젊은층의 투표율이 올라가면 박 후보가 이길 거라는 생각에서다. 현씨는 아들 결혼식이 있던 16일에도 결혼식 두 시간 전까지 순둥이와 인사동에 있었다. 순둥이의 이름도 잠시 ‘본때’로 바꿨다. “투표로 본때를 보여주자”는 뜻이었다.

순둥이의 사진은 트위터 등을 통해 퍼지며 인터넷 스타가 됐다.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박 후보 캠프가 집 근처라 퇴근길 순둥이와 함께 캠프에도 자주 들렀다. 꼬리를 흔들며 사무실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던 순둥이는 어느새 캠프의 활력소이자 귀염둥이가 됐다.

현씨는 한국의 내부 고발자 1세대다. 감사원 6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96년 “감사원이 효산종합개발의 콘도사업에 대한 감사를 무마했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고 폭로했다. 검찰 수사결과 청와대 부속실장 등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현씨의 폭로가 사실도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그를 파면했다. 그가 감사를 무마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한 한 국장은 현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현씨는 지난 2008년, 1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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