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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싸는 ‘우생순’ 후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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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현수 선수

28일 경기도 용인시 실내체육관에 모인 용인시청 여자핸드볼팀 선수들은 다른 때보다 더 표정이 어두웠다. 이날은 동료인 김정심, 권근혜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가 열리는 브라질로 출국한 날이지만 남은 선수 10명은 다음 달 팀 해체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시청 핸드볼팀은 지난 6월 해체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났었다. 당시 해체를 앞두고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우생순 신화’를 재현했다는 찬사를 들었다. 용인시청 핸드볼팀 김운학(48) 감독은 “외부의 추가 지원이 없으면 12월 말로 예정된 팀 해체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올 들어 직장운동부 11개 종목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65명의 선수와 지도자들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용인시가 무리하게 벌인 경전철사업이 운동부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용인시는 협약이 해지된 경전철 민간사업자에게 당장 5000여억원의 공사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다.

 경기도의 다른 지자체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성남시는 12개 종목을 해체해 선수와 지도자 82명이 실직했다. 지난해 7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공동 관리하는 판교특별회계에서 일반예산으로 전용한 5400억원을 한꺼번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한 뒤 단행한 긴축재정의 일환이었다.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에 오른 성남시청팀 소속 안현수(25) 선수도 팀 해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안 선수는 결국 지난 8월 러시아로 귀화했다. 직장운동부 해체의 칼바람이 스포츠 영웅의 국적까지 바꾼 것이다.

 경기지역에서 가장 많은 직장운동부를 운영하는 수원시도 23개 종목 282명의 선수를 2013년까지 18개 종목(230명)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대신 수원시는 프로야구 제10구단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창단 계획서를 통해 200억원을 들여 수원야구장을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수원시청팀 소속 직장운동부 관계자는 “돈 되는 종목에 올인하는 기업적 사고로는 체육진흥이란 공공기관의 운동부 운영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파악한 올해 해체됐거나 해체될 예정인 시·군 직장운동부는 8개 시·군 28개 팀, 230여 명에 이른다. 군포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경기도가 직장운동부에 주던 보조금을 중단해 독자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광명시(태권도·유도)와 김포시(태권도), 화성시(빙상) 등 4~5개 지자체가 팀을 새로 창단했지만 쏟아져 나오는 ‘무적’ 선수들을 흡수하기엔 역부족이다. 경기도체육회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재정난을 해체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체 예산에 비하면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다. 연봉제 전환 등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08년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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