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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회에 당장 급한 건 보조금보다 경쟁력 높일 교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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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초 발효를 앞두고 있 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 미 FTA를 통해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 (GDP)이 5.6%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문제는 농업 분야다. FTA 발효 뒤 매년 8445억원, 15년간 12조원의 피해가 우려 된다. 이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정 부의 지원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 만 농업 스스로 경쟁력과 자생력을 갖추 는 일 또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 리가 높다. 중앙SUNDAY가 차별화된 방 식으로 쌈채소와 벼·한우·버섯 등을 길러 억대 소득을 올리는 새로운 농업 경쟁력 의 현장을 다녀왔다.
지난 21일 오후 전남 담양군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남서쪽으로 8~9㎞를 달려 도착한 ‘두리농원’. 삽살개들이 가장 먼저 나와 방문객을 반겼다. 농원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잔디마당을 가운데 두고 다섯 칸이 넘는 전통한옥 세 채가 ‘ㄷ’자 모양으로 서 있었다. 닭들이 돌아다니는 마당 구석구석엔 소나무와 화초 등이 심어져 있어 위세 높은 대감댁을 연상케 했다. 두리농원의 현장실습교육장과 숙소로 쓰는 건물이다. 한옥 너머로는 비닐하우스 30개 동이 펼쳐져 있었다. 두리농원의 ‘주종목’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기농 상추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상추를 비롯한 온갖 쌈채소가 1300㎡(400평) 가까이 되는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기농 사업 5년 만에 자리잡아
두리농원 대표 김상식(48)씨는 전남공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고향 담양에서 농업에 뛰어들었다. 토마토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는 소와 멧돼지까지 키웠다. 알로에도 200그루 정도 심었다. 하지만 이내 소값 폭락으로 축산을 접어야 했다. ‘농사만으론 안 되겠다’는 생각에 1987년 도시로 나갔다. 치킨집도 하고 고향에 남겨둔 알로에를 이용해 대리점도 열고 지역 백화점에 납품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8년 만인 95년 말 사업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시작한 게 유기농 쌈채소 재배였다. 김씨가 이 분야에 뛰어든 이유는 뇌성마비를 앓는 아들 때문이었다. 장애로 고통받는 아들을 보며 ‘내 아이에게는 꼭 건강한 채소를 먹여야 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유기농업을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5년 만에 자리를 잡았다. ‘3℃ 숨쉬는 맑은 채소’라는 브랜드로 ‘아이쿱 생협’과 ‘풀무원’ 등에 쌈채소를 납품하고 있다. 지금은 연매출 7억여원에 순수익은 1억5000만원 정도 된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김씨는 “농민도 이젠 교육도 받고 변해야 한다. 불만만 늘어놓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선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사업영역은 농사를 넘어 교육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2007년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농촌체험학습장을 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채소 농사를 짓고 한옥에서 1박2일간 머무르는 등 농촌체험을 하도록 꾸몄다. 농원 앞쪽 전통한옥이 바로 그 용도다. 건물을 올리는 데만 8억원이 들었다. 농촌체험학습장은 현재 두리농원을 알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연간 7000명 이상의 학생이 찾아오는 명소다. 학습장이 생긴 뒤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이들도 생겼다. 현재 직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출액의 10%를 차지한다. 지금도 그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김씨는 “농촌도 무조건 수확한 작물로만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요즘은 수확은 아예 하지 않고 체험활동 교육 쪽으로 방향을 튼 농가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작물 생산해야
충북 진천군 문백리의 박찬식(27)씨는 벼농사만으로 억대 소득을 올리는 신세대 농업인이다. 그는 일찍부터 농부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준비해왔다. 진천농고와 한국농수산대 식량작물학과를 나왔다. 평생 벼농사를 지은 부친의 뒤를 잇기로 한 것이다. 부친은 평범한 시골 농부에서 문백 지역 농협조합장까지 오른 성공한 농업인이다.

지난 21일 오전 찾은 박씨의 논엔 하얀 ‘공룡알’들이 놓여 있었다. 짚단을 뭉쳐 효소를 넣고 비닐로 싼 것을 박씨는 그렇게 불렀다. 공룡알은 소의 여물로 쓰이는데 개당 6만5000원에 팔아 짭짤한 부수입이 된다. 박씨는 대학을 졸업한 2007년부터 아버지를 이어 160마지기, 13만㎡(약 4만 평)의 논 농사를 짓고 있다. 160마지기 중 60마지기는 일손이 없는 이웃의 논을 위탁받은 것이다. 수입도 남부럽지 않다. 연 1억3000만원 매출에 순수익이 6000만원에 이른다.박씨의 벼농사 경쟁력은 세 가지다. 첫째는 흑미다. 지역 25개 작목반과 함께 흑미를 생산해 ‘문백특수미’라는 이름으로 신세계와 이마트에 공급한다. 3㎏당 3만5000원에 팔리는 고급쌀이다. 문백리 지역은 토질이 모래질이라 일반 벼는 밥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능성 건강미인 흑미는 질감이 조금 거칠어도 밥맛에 문제가 없었다. 토질과 고객의 수요를 고려한 품종 선택이 성공 비결이었다.

둘째는 우렁이와 돈분액비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이다. 모내기를 할 때 돼지분뇨를 발효시켜 액체로 만든 ‘돈분액비’를 뿌리고 우렁이를 논에 풀면 잡초가 97% 이상 제거된다. 셋째는 무인헬기다. 7~9월 사이에 미생물로 된 친환경 농약을 뿌릴 때 무인헬기를 이용한다. 농약통을 메고 손으로 뿌리면 하루 종일 5000평 정도가 가능하지만 헬기로는 15~20분이면 충분했다. 박씨는 이를 위해 전국에 300명도 안 된다는 무인헬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쌀시장 완전개방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어차피 외국 쌀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친환경쌀 등 소비자가 원하는 작물을 생산해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벼농사도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농촌사회에 당장 시급한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했다. “아직 대부분은 70~80년대에 해오던 방식대로 농사를 짓고 있다. 보조금만 지급한다고 농촌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농업교육이다.”
 
전국 평균보다 kg당 5000원 더 받아
연기군과 맞닿아 있는 대전시 외곽 신동의 석청농장 백석환(52)씨는 한우 80마리를 키운다. 역시 한·미 FTA의 최대 피해자로 볼 수 있지만 그는 담담하다 못해 자신만만했다. 백씨는 “한·미 FTA가 영농인에게 위기인 게 사실이고 실제로 정부 지원이 부족해 대다수 영농인이 어려워하지만 나는 승부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허언(虛言)이 아니다. 한우의 육질 최고 등급인 1++ 등급 출현율은 전국 평균이 7~8%에 불과하다. 하지만 석청농장은 무려 80%에 달한다. 그만큼 비싼 한우를 생산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료값도 이웃 농장들보다 55%나 덜 든다. 겨와 옥수수 껍질, 버섯 등을 섞은 ‘자가농산물배합사료’를 개발한 덕분이다. 백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수산식품부 신지식인농업인장(2006년)과 농협중앙회 새농민 본상(2010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스타 농민’이다. 석청농장의 한우가 우수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경매가 벌어지는 공판장에서는 매번 백씨의 소를 구하기 위해 경매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백씨의 소는 전국 평균에 비해 ㎏당 5000원 이상 비싸게 팔린다. 덕분에 연매출 1억7000만원에 순익이 65%를 넘는다.

백씨의 농장에선 축산농가의 ‘흔한’ 악취가 나지 않는다. 파리 등 벌레도 거의 없다. 축사 바닥은 톱밥이 고운 모래처럼 깔려 있다. 유산균 등 미생물발효제를 뿌린 덕분이라고 했다. 축사에선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백씨는 “동물도 사람처럼 환경이 더럽고 불쾌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제대로 클 수 없다”고 말했다.
석청농장은 영농후계자와 학생들의 필수 견학코스가 됐다. 한 해 500여 명이 이 농장을 찾는다. 석천농장의 시스템을 본뜬 농장이 전국적으로 40개에 이른다. 백씨는 “항상 배우고 공부한다는 열정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5~10년 내 승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최초 유기농 버섯 재배
버섯농사로 연 3억원 매출에 1억원의 순익을 올리는 농부도 있다. 경북 경산에서 ‘버섯명가’라는 이름의 농장을 운영하는 김영표(52)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경산시 환산리 들판 1만6500㎡(5000평)에 검은 햇빛 가리개를 두른 비닐하우스 40동을 설치해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다.김씨는 원래 대구에서 출판업을 했다. 1993년 위암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사업을 접고 귀향했다. 암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상황버섯을 구해 달여드렸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부친은 상황버섯 달인 물을 마시고는 2년을 더 사셨다. 김씨가 버섯을 테마로 귀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그는 무작정 서울 대형서점을 찾아 버섯과 관련된 국내외 책을 두루 섭렵했다. 김씨는 유기농 버섯 재배를 고집한다. 돌아가신 부친이 달여 마시던, 바로 그 버섯을 재배한다는 마음가짐이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물은 식수 활용판정을 받은 물이다. 동네에 과수원 방제가 있는 날이면 미리 비닐 하우스에 가림막을 설치해 농약이 스며드는 걸 막았다. 덕분에 김씨가 재배하는 버섯은 국내 최초로 유기농 버섯으로 등록됐다.
김씨는 농장 앞에 식당을 짓고 있다. 버섯을 이용한 음식을 개발해 손님들에게 제공, 교육하는 곳이란다. 그는 “웰빙, 슬로 푸드에서 이제는 힐링 푸드(healing food)가 각광받을 것”이라며 “각종 암 치료에 효과적인 버섯을 활용한 음식을 개발해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부하는 농부다. 하루에 신문 7개를 읽고, 건축·디자인, 어린이 관련 잡지를 정기 구독한다. 1년에 두세 차례 일본을 방문해 선진 시장의 동향도 파악한다. 그는 “신문과 책 등에서 최신 경향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자유무역은 우리에겐 기회”라고 말했다.

담양·진천·대전·경산= 특별취재팀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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