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talk ⑮·(끝) 개그우먼 김현숙의 청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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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프셨어요. 그래서 외할머니가 저희 삼남매를 자주 돌봐주셨죠. 외할머니가 전라도 분이라 워낙 손맛이 좋았어요. 라면 하나를 끓여도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건 어딘가 모르게 더 맛있었으니까요. 아마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 우리 남매를 챙겨주신다는 따뜻한 느낌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다 맛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청국장이에요. 구들장에 직접 청국장을 띄워서 끓여주시곤 했죠. 지금이야 두부·호박·파 등 재료를 많이 넣고 끓이지만 그때는 청국장만 넣고 멀겋게 끓여 주셨어요. 그런데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외할머니의 정성 때문이었겠죠. 그때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청국장은 꼭 설탕을 넣은 것처럼 달았어요.

 저도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을 돌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많이 했어요. 한식·양식은 물론이고 분식까지 두루 섭렵했죠. 처음 만들 때는 오빠와 동생이 실험 대상이었어요. 덕분에 지금은 다 잘 만드는 편이에요. 특히 한식을 잘하는데, 기본적으로 찌개와 국 종류는 거의 다 할 줄 알아요. 청국장도 꽤 잘 만드는 편이에요. 사실 우리나라 찌개나 국은 공통으로 멸치 육수가 기본이잖아요. 그것만 하면 금방 배우는 것 같아요. 조미료는 전혀 안 써요. 조미료를 넣으면 첫 맛은 좋을지 몰라도 금방 질리거든요. 대신 재료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써서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청국장을 끓일 때도 재료가 중요해요. 직접 만든 청국장만 사요. 할머니 한 분이 직접 만든 청국장을 팔러 목요일마다 저희 동네에 오시거든요. 청국장 자체가 맛있으면 다른 재료를 많이 넣을 필요도 없죠. 청국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묵은지를 살짝 씻어서 넣죠. 묵은지엔 이미 깊은 맛이 배어 있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씻어 내도 맛이 살아 있어요. 일단 묵은지를 깨끗한 물에 헹궈 물기를 꽉 짠 다음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요. 파는 송송 썰어두고요. 뚝배기에 들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넣어 달달 볶다가 멸치 육수를 넣고 한소끔 끓어요. 뚝배기가 팔팔 끓어오른다 싶으면 청국장을 넣고 잘 풀어 주세요. 그런 다음 다진 마늘과 송송 썬 파, 고춧가루를 넣어 섞은 뒤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에요.

 청국장 맛은 꼭 한국 사람 같아요.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맛이 정말 깊잖아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처럼 청국장도 깊은 맛이 있고요.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도 한국인의 끈기를 닮았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목표를 정하면 꼭 해내고 마는 근성이 있잖아요. 청국장도 그런 맛을 내는 것 같아요.

정리=이상은 기자

●김현숙의 청국장 조리법

◆재료

청국장 세 큰 술, 멸치육수 3컵, 대파 반 개, 고춧가루 1큰 술, 다진 마늘 1작은 술, 묵은지 약간, 들기름 약간.

◆조리법

1 묵은지는 깨끗한 물에 헹궈 물기를 짜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파는 송송 썰어둔다.
3 뚝배기에 들기름을 두르고 묵은지를 넣어 달달 볶다가 멸치육수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4 전체적으로 팔팔 끓어오르면 청국장을 넣어 잘 풀어준다.
5 다진 마늘, 송송 썬 파, 고춧가루를 넣어 섞은 뒤 한 번 더 끓인다.

●김현숙은 … 1978년생. 경성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우수상과 2008년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네티즌 인기상을 수상했고, 케이블 채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로 인기를 누렸다. 2009년 ‘하늘과 바다’ ‘정승필 실종사건’ 등 영화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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