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미국·유럽 위기, 우리에게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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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우정
넥솔론 전략대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도 경험했고, 불과 몇 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겪어 보았지만, 이번 유럽 금융위기만큼 미국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여태까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통상 미국 재무장관이 주재하는 전 세계 재무장관 회의나 중앙은행 총재 회의 등이 날마다 열렸지만, 지금은 단지 유럽연합의 회의 소식만 들리고, 또 그곳에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재정안정기금에 투자해 달라며 미국이 아닌 중국에 직접 전화를 걸어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유럽은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이번엔 중국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는 얘기다. 리비아 사태만 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여태까지 중동의 정세는 미국 주도 하에 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중동의 민주화 물결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주 제한적으로 줄었다. 과거처럼 주도적 군사 개입은커녕 나토의 일원으로서 개입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 세계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생각과 움직임을 읽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많은 다른 개별 국가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태껏 독일 총리나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국내 경제 상황이 이토록 크게 움직인 적은 없었다. 구대륙이라 불리는 유럽과 절대 강자였던 미국의 재정적자는 신흥 강국인 중국의 급격한 부상을 더 두드러지게 했다. 세계 경제·정치의 중심 축이 아시아로 향하는 과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20세기의 경제 중심이던 유럽과 미국이 이대로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은 과거 20년 동안 중점을 두어 온 외교의 주안점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전환,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섰다. 지금껏 중국의 앞마당으로 여겨지던 동남아시아 시장을 미래의 대안 시장으로 보고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또 미국은 안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아시아 제품에 밀린 채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가는 제조업 기반을 다시 살려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인센티브를 줘 가며 미국 내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공재 사업 입찰의 경우에도 해당 지역에 제조업 기반 투자를 연계해 심사하고, 몇 명 이상의 고용 및 투자 금액을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다. 단순 사업 입찰만을 생각하던 입찰 참가 회사들로서는 보다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직은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을 더 이상 외국회사 및 자본에 그냥 넘기지만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상대적으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내외 사업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편이다. 대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자국의 경쟁력을 보다 높여 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유럽 또한 어려운 재정 적자 및 높은 실업률 속에서도 어려운 산업별로 각종 지원금 및 구제 금융을 통해 일자리를 지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산업 기반 붕괴를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복지 국가로서의 예산 집행을 단순 복지에서 일자리 지키기를 통한 복지로 전환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지원금 및 투자 인센티브를 받은 회사들에 의무적으로 고용을 유지시키고 외국으로의 산업 기반 이전을 방지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아무리 재정 적자가 크고 어려워도 일단 자국 내의 산업 기반을 지키는 것에는 양보가 없다는 모습이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미국·유럽은 이제 없다. 오로지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제조업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게다가 이제 미국·유럽과 FTA까지 맺어 상대 시장으로의 무역 및 진출에서 그 누구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여기까지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랴. 애써 뚫어놓은 시장들이 무너지면 FTA 체결의 유리함 따위는 문젯거리도 아니다. 이미 유럽의 경제 중심인 독일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경쟁력을 회복한다면 우리에게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세계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내 경제 상황이나 산업 기반 걱정에 날을 새우다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 세계 시장이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세계의 선진 경제로 진입할 호기다.

이우정 넥솔론 전략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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