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다음날, TPP 회의 소집한 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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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독주에 일본과 중국이 긴장하고 있다. 올 한 해에 한·EU FTA를 발효시키고 한·미 FTA 비준안까지 통과시키는 ‘다이내믹(dynamic) 코리아’의 속도전(速度戰)에 놀란 것이다. 일본·중국 기업들 사이에선 “우리 정부는 뭐하느냐”는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나온다. 양국 정치권도 각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한·중·일 FTA를 향한 고삐를 바짝 잡아매고 나섰다.

 당장 일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의원 총회를 24일 소집했다. 한국이 미국과 FTA를 맺은 만큼 일본도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사실상의 미·일 FTA로 불리는 TPP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NHK는 23일 “일본 정부는 대외적으로 TPP 협상을 담당할 사령탑으로 특별대표를 두고 그 밑에 TPP에 참여하는 9개국과 협상을 맡을 교섭관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외무성·경제산업성 등 관련 부처에서 공무원 수십 명을 파견해 협상을 전담하게끔 하겠다는 계획이다.

 FTA 날개를 단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컸다. 이달 8일 일본 도쿄에서 연 한국투자설명회. 자리가 부족해 보조의자까지 동원됐다. 지식경제부 유법민 투자유치과장은 “한국에 투자하면 우리도 한·EU, 한·미 FTA의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문의가 특히 많았다”고 전했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 서울지점의 김영환 본부장은 “일본의 거래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상담하러 거의 매주 서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고와 지진 등으로 일본 밖 안전 투자처를 찾던 일본 업체들이 요즘 한국 진출에 부쩍 관심을 보인다”며 “한국의 잇따른 FTA 체결로 한국에 공장을 지으면 미국·유럽 진출이 일본보다 유리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FTA 구애(求愛) 강도도 세졌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의 박한진 부관장은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가파르게 올라 한국과 품질 대비 생산 비용의 격차가 줄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관세 효과까지 더해지면 중국 기업도 방심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중국 총리가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한·중·일 FTA를 챙긴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이시형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은 23일 다음 FTA 일정과 관련해 “중국과 FTA를 체결한다는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언제 개시할 것인지는 상황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교역 규모가 미국의 2배이고, 농산물·공산품 가격 경쟁력 또한 강해 한·중 FTA의 영향력은 한·미 FTA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유리한 입장을 선점한 이상 중국·일본과의 FTA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FTA 시대 개막’을 일종의 ‘대반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과 일본에 치이던 ‘샌드위치’ 신세를 FTA로 역전시킬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지금 한국은 엔고와 FTA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을 맞고 있다”며 “기술력으로는 중국을 압도하고 제품가격 경쟁력으로는 일본에 앞서는 ‘역(逆)샌드위치’ 상황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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