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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돈줄 죄고 이스라엘 강경파 달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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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함께 워싱턴의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제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이란의 석유산업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주요 자금을 세탁하는 경로로 사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워싱턴 포스트(WP)와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미국·영국·캐나다가 21일(현지시간) 발표한 이란 제재안을 전하면서 ‘이례적인 강력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기존의 금융제재를 강화하면서 석유산업까지 조준하기 시작한 데다 영국이 처음으로 한 국가와의 금융거래 자체를 끊었기 때문이다.

 3국의 고강도 동시 조치는 이스라엘의 대이란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이란의 핵무장을 악몽으로 보는 이스라엘 내부에선 핵시설 폭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0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1년 안에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은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초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면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다.

 지난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보고서를 내면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혈맹인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 등을 공격할 경우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군사적 맞대응과 외교적 마찰, 미군의 희생, 재정 부담 등은 2012년 대선 판도를 바꿔 놓을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날 발표된 추가 제재조치는 일종의 ‘예방주사’ 성격을 띠고 있다. 일단 미국을 비롯해 북미·유럽 국가들이 강수를 둔 만큼 이스라엘도 당분간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한 발 물러나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발목도 잡아 둔 셈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차원의 대이란 추가 제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선의 조치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금융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우선 이란 중앙은행과 석유화학산업을 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이란의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이란 정부 예산의 70%는 석유 등 에너지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AFP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중앙은행은 석유와 관련 제품을 수출한 대금이 모여드는 깔때기”라며 “이란은 한국·프랑스·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 받은 지불금을 중앙은행에서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상업은행에 대해선 이미 제재조치가 이뤄진 바 있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갈수록 중앙은행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반대로 이란이 이미 오랫동안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아 온 만큼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제재조치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WP는 “일부 경제학자는 제재가 지속돼 국제유가가 올라가면 결과적으로 서방세계는 손해를 보고, 이란만 득을 볼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2001~2008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대변인을 지냈던 리처드 그레넬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기고한 글(‘이란 외교에 실패한 오바마’)에서 이번 제재조치를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핵을 포기하라고 효과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아직 외교적 조치로 핵 문제를 풀 시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외교 방식에 불평하는 나라들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지 지난 18개월 동안 오바마 행정부가 이 사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투표에 부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침묵이 협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한편 AP통신은 위성 감시 결과를 근거로 IAEA가 핵 개발 의심시설이 있다고 지목한 테헤란 남부 파르친에서 은폐 작업으로 추정되는 활동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지난 4~5일 화물트럭과 특별수송차량, 크레인 등 이례적으로 많은 차량이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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