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축구] 축구의 또다른 재미…이탈리아의 빗장 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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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카테나치오(Catenaccio)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자물쇠 수비는 수비수들의 뛰어난 개인기에 바탕을 둔다고 할 수 있다.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 위기 대처 능력, 그리고 상대 공격의 수를 먼저 읽어 내는 노련함까지 포괄하는 이 모든 능력이 카테나치오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라 말할 수 있다.

유로 2000 대회 기간 중 이탈리아 팀은 쓰리백의 수비 라인을 사용했다.

이는 유벤투스, AC 밀란 등 이탈리아의 주요 명문 클럽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비 전술이라 할 수 있는데, 스위퍼 시스템과 달리 세 명의 수비수가 나란히 포진하면서 상황에 따라 대인마크와 지역방어, 그리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절히 혼용하는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최종 수비 라인 앞 선에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해 미드필드 라인으로부터의 1차 필터의 임무를 부여한다.

한편, 중간에 공이 커트될 경우에는 적절한 전진 패스로 앞 선의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는 최전방 공격수에게 단번에 찔러넣어주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된 역할은 우선적으로 상대 공격의 일차 저지와 함께 포백 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최종 수비 숫자를 커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비수는 5명에 가깝지만 중앙 쪽의 두터운 수비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좌우 측면 쪽에 허점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키 위해 좌우에 보통 사이드 어태커로 칭할 수 있는 선수들을 포진시키게 되는데, 이번 대회 참가한 이탈리아 대표 선수 가운데 이 자리의 임무를 부여받은 선수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페소토, 콘테, 잠브로타 등이 바로 그들이었는데,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란 바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능한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란 점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더욱 처진 위치에서 수비수로도 활용이 가능할뿐더러 미드필드에서부터 상대에 대한 압박 전개를 그만큼 더 용이하게끔 만들어 주는 선수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공격 투톱으로 나서는 선수 외에 나머지 선수가 다 수비에 포인트가 맞춰진 전술 운용을 펼치는 것이 앞서 나열한 시스템의 결론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잠시 공격 쪽에 눈을 돌려서 99/00 시즌 유벤투스 경기를 상기해 보자.

다비즈로부터 시발된 공격의 줄기가 지단의 중원에서의 날카롭고 정확한 볼 배급을 통해 발재간이 뛰어난 델 피에로나 움직임이 좋은 인자기에 연결되고 결정력이 높은 이들 투톱의 득점에 의존하는 비교적 단순한 중앙 공격을 펼쳤던 팀이 바로 유벤투스였다.

반면 좌우측 사이드 어태커의 측면 돌파나 윙백의 오버래핑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과 무관치 않게 이탈리아 역시도 동일한 전술 운용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막강한 수비벽 구축과 함께 순도 높은 결정력이 구비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유벤투스의 다비즈-지단-델 피에로(or인자기)-인자기의 라인과 유사한 알베르티니-피오레(or토티)-토티(or델 피에로)or인자기 라인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고도 평할 수 있겠다.

이것이 이번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가 채택한 전술이라 할 수 있으며, 대회 내내 이탈리아의 수비를 돋보이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러한 탁월한 결정력을 겸비한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만 본론으로 돌아가서, 시스템이 가능케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그들의 놀라운 수비 조직력에 앞서 더 칭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수비수 개개인의 뛰어난 수비력이 아닐 수 없다.

전술적인 포인트가 수비에 맞춰져 있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보니 자연 수비가 강했다기 보다는 개개인의 전술 이해도가 그마만치 뛰어났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프랑스의 데사이나 네덜란드의 스탐과 같이 상대 공격수보다 우세한 체격 조건 하에 상대를 제압하는 식의 수비가 아니라, 수비에게 요구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에 맞는 행동을 빠른 시간 내에 적절히 선택하는 능력을 개개인이 이미 인지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이탈리아 수비가 이토록 강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모범적인 표본을 제시한 선수가 바로 네스타, 카나바로, 그리고 말디니였다.

공격 축구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세계 축구계에 수비 축구로 얼마간 외면을 받아야 했음은 물론이고, 급기하 자국에서조차 팀을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감독을 자리에서 내려앉게 하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진통을 겪게 만들었던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

하지만 냉정히 축구 그 자체의 묘미를 음미할 줄 안다면 수비 또한 축구의 절반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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