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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역량 강화하는 영재교육

중앙일보

입력

KAIST 차세대 IP 영재기업인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린 여름방학 캠프에서 교육생들이 과제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영재 교육이 실무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배운 지식을 활용해 실생활 문제를 해결·개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학·과학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이디어의 상품화까지 시도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지적재산으로 만들어

 이 같은 목적을 반영한 가장 대표적인 교육과정으로 ‘차세대 IP 영재기업인 프로그램’이 꼽히고 있다. IP는 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의 줄임말이다. 지식에 그치지 않고 이를 상품화해 시장에 내놓기까지 기획·창업 능력을 갖춘 인재로 탈바꿈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창의력을 키우는 종전의 발명 교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IP 영재기업인 프로그램은 2009년 하반기에 특허청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KAIST와 POSTECH이 IP영재기업교육원을 설립해 교육을 맡고 있다. 첫 교육생인 초·중·고생 101명이 현재 기본과정을 밟고 있다. 교육은 기본과 심화 2년 과정으로 진행되며 본인이 희망하면 3년차부터는 전문과정과 공개과정을 밟게 된다.

 교육은 지식재산권을 가진 CEO를 기르는 데 맞춰져 있다. 주중과 학기 중엔 온라인으로, 휴일과 방학 땐 캠프로 수업이 진행된다. 기본과정에선 기술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이해, 창의적 사고기법 학습, 기업 설립·운영, 아이디어 구현 역량 등을 배운다.

 심화과정에선 각종 산업기술의 융합 능력, 아이디어 도출을 위한 기능과 기법 습득, 기업사례 분석과 기업모형 설계 등을 배우게 된다. 여기엔 경험과 식견을 갖춘 기업가와 교수들이 멘토로 함께하며 교육생들의 아이디어 구현을 도와준다.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했던 전(前) 특허청 정연우 창의발명교육과장은 “지식의 이해 대신 과제 해결 방식의 프로젝트, 특정 분야에 대한 집중보다 여러 분야의 융합을 강조하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업인 멘토링, 국내외 인턴십, 창의발명 네트워크 지원 등 실무중심 교육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교육생 선발전형도 교과 지식에 매몰된 보통의 모범생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적인 과제해결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뽑고 있다. 각 학교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교사·전문가·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과제수행과 개인·집단면접을 실시해 선발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 에너지로 녹색사업을 할수 있는 법’을 기획·발표하라는 과제를 준다. 지원자는 아이디어를 내 지적 재산으로 등록하고 기업을 세워 시장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 이윤을 창출하는 총체적인 계획을 세워 발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명대회, 창의력경진대회, 과학탐구대회 등에서 다수 입상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IP영재기업인 교육생으로 뽑히고 있다.

 정현철 KAIST영재교육센터장은 “이들이 2010년에 총 40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다”고 말했다. 1인당 약 4건의 지식 재산을 창출한 것이다. 정 센터장은 “대한민국인재상 등 각종 관련 대회에 입상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교육생 중 상당수가 한국과학영재학교·과학고에 진학하는 것은 물론, KAIST와 서울대에 조기 입학하는 등 영재 육성의 또다른 요람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생활 문제 개선·해결하는 능력 교육

 KAIST에서 운영되는 다른 영재교육원들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과학영재교육연구원 산하에는 사이버과학영재교육센터, IT영재교육원, 글로벌영재교육원 등이 있다. 과학·수학·정보통신은 기본이고 문화기술도 배운다. 문화기술 교육은 사회구조의 변화, 역사의 흐름, 문학 작품 등을 배우며 인간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컴퓨터와 응용프로그램, 이미지·영상같은 기술도 배운다. 과학자·기업가로서의 소양과 품성을 기르기 위한 인문학 강좌도 열린다.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해 과학적 글쓰기 수업도 병행된다.

 글로벌영재교육원은 수학·과학·기술·공학·예술 등 다섯 가지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를 활용해 프로젝트 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수업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현재 가용한 에너지를 활용해 친환경 주택을 만들기’ 주제가 주어진다. 교육생들은 수십일 동안 주택 안에 들어갈 친환경 기능과 요건들을 하나씩 찾아내고 만들어간다. 이를 종합해 자기 나름의 친환경 주택 모델을 설계·발표하고 친구들과 장·단점을 토론하는 식이다. 류지영 박사는 “심화반 학생은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실제실험에도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이버과학영재교육센터에서도 상식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과제해결 중심 수업이 이뤄진다. 항공촬영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장착한 풍선 띄우기를 과제로 제시하면 카메라 무게를 지탱할 풍선의 규모, 풍선에 들어갈 헬륨가스 양 등이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식이다. 유홍렬연구원은 “교육과정은 교과지식과의 연계가 아니라 탐구심과 성취감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실생활 문제를 개선·해결하는 역량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의력 발휘에 불가피한 시행착오를 이겨내는 능력을 기르고, 지속적인 호기심을 실천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학습관리시스템(LMS)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생들의 교육활동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질의·응답 게시판, 대화·토론방, 온라인 멘토링 등 교육생의 과제해결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윤지아 연구원은 “예전엔글이나 동영상으로만 문제를 주고 채점해 탈락여부를 결정했으나 지금은 활동 과정에서 교수·학습을 주고받으며 교육생의 사고과정을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교육과정수료자가 지난 학기의 경우 30%에 이르렀다”며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보다 두 배나 올랐다”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사진="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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