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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툭하면 결석하던 케냐 아이들, 구충제 먹고 달라졌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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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빈곤의 덫 걷어차기
딘 칼런·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청림출판
399쪽, 1만7000원

당신은 혹시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프리카 결연아동을 후원하고 있는지. 또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기부금을 내거나, 사랑의 동전 모금함에 기꺼이 동전을 넣은 적 있는지. ‘나는 선량한 세계 시민’이라며 뿌듯해 했을 당신에게, 이 책은 묻는다. “그런데 당신의 그 기부금, 지구 저편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하는 데 정말 보탬이 되고 있나요?”

 지난 50년 간 선진국은 2조3000억 달러(약 2600조원)를 빈곤국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들의 가난 탈출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혹시 이들을 돕는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순 없을까. 딘 칼런 예일대 경제학 교수와 국제구호단체 일원인 제이콥 아펠, 두 사람은 수년간 그 답을 찾아왔다. 그리고 가나의 골목길과 케냐의 농촌, 인도의 시장, 필리핀 논바닥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었다.

 케냐 농촌 마을 부시아를 보자. 설사병은 마을 사람, 특히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워터가드’라는 염소소독제로 식수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부시아 사람들은 이를 무료로 나눠줘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홍보해도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워터가드를 떨어뜨리는 기계를 우물 옆에 설치하자 달라졌다. 물을 길으러 갈 때마다 ‘워터가드를 떨어뜨려야지’라고 다들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계 덕분에 집집마다 워터가드를 나눠주는 데 드는 비용도 줄었다.

 때론 작은 인센티브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케냐 초등학교는 결석률이 평균 18%에 달했다. 구호단체가 학생들에 교복을 무료로 나눠주자 결석률은 11%로 떨어졌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이 구호단체는 학생들에 구충제를 무료로 나눠줬다. 기생충 감염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건 당연하다. 그 뿐 아니라 결석률이 이전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100달러짜리 교복보다 연간 3달러50센트 어치 구충제를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선량한 기부 못지 않게 그들의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작은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즉 일종의 ‘넛지(Nudge, 바른 선택을 돕는 개입)’효과가 빈곤문제 해결에서 빛을 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원제인 ‘선의 그 이상(More Than Good Intentions)’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이 빈곤이란 적을 단칼에 날려버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말라위 사람들은 에이즈 검사를 받고도 왜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까, 스리랑카에서 소액 대출을 받아 창업에 성공한 건 왜 남자뿐일까 등.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의문거리도 남아있다. 이들이 더 많은 정답을 찾아내, 다음 번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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