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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과 관능의 사이에서 - 애슐리 쥬드

중앙일보

입력

하루에도 수없이 뜨고 지는 헐리웃 연예계에서 그리 폭발적이진 않지만 서서히 보석으로 다듬어진 몇몇 여배우들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필자는 별 고민 없이 '애슐리 쥬드(Ashley Judd)'를 떠올린다.

그녀는〈더블 크라임(Double Jeopardy)〉의 흥행성공으로 매력적인 조연급 배우에서 주연급 연기자로 부상했다. 〈더블 크라임〉은 '해리슨 포드'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도망자〉의 여성 버전쯤 되는 영화. '토미 리 존스'가 〈도망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추적하는 배역을 맡았다. 〈더블 크라임〉의 본래 의미는 미국만의 독특한 법 제도에서 따왔다. 즉, '한 피고가 같은 내용의 사건으로 두 번 기소될 수는 없다'는 내용의 법정 용어로 피고가 같은 죄로 두 번 기소될 위험성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법규를 의미한다.

'애슐리 쥬드'는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벌인 자작살인극에 말려 남편 살해죄로 복역하는 상류층 부인 '리비' 역을 맡았다. '리비'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남편을 죽여도 감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동료 죄수의 조언을 새기고 조기 출감한다. 빼앗긴 아들을 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리비'가 남편을 추적하는 것이 영화의 본론이다. '토미 리 존스'가 보호감찰관으로 등장한다. 진실을 발견하고 뒤쫓던 범인의 보호벽이 되어주던, 〈도망자〉 이미지의 복제판이다. 그러나 '애슐리 쥬드'의 갈등과 변신에 초점이 맞춰져 '토미 리 존스'가 한 일은 별로 없다. 감독은〈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브루스 베레스포드'.

미국 개봉당시 평론가들은 '영화는 별볼일 없지만 '애슐리 쥬드'의 연기만큼은 정말로 뛰어나다'는 평을 내릴 만큼 '애슐리 쥬드'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뉴욕 데일리 뉴스지의 '잭 매튜'는 "애슐리 쥬드와 북서부의 배경의 조화는 이 영화를 올해 최고로 아름다운 졸작(The Most Beautiful Bad Movie)으로 만들었다"는 유머스런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영화 평이야 어쨌든 흥행은 비교적 성공했고 '애슐리 쥬드'의 주가는 상종가를 쳤다.

'애슐리 쥬드'는 근래 한창 치솟는 인기를 증명하듯 유명세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연기자로서의 평가보다는 '나오미 쥬드'의 딸, '위노나 쥬드'의 여동생, 혹은 '매튜 매코너히'와 '마이클 볼튼'의 여자 친구로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던 배우다. 어머니와 언니의 후광으로 비교적 쉬운 데뷔를 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순탄치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부모의 이혼과 오랜 방랑생활을 통해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했다.

열 다섯에 모델 생활을 시작했지만 켄터키 주립대학에 입학해 불어와 인류학, 예술사, 연기, 여성학 등을 공부할 만큼 연기자로서 갖춰야 할 지적인 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90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언니의 조언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 TV와 영화를 오가며 작은 배역을 맡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문제작 〈내츄럴 본 킬러(Natural Born Killers)〉에선 대량학살의 유일한 생존자로 출연했지만 아쉽게도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는 아픔을 겪기도.

'웨인 왕' 감독의〈스모크(Smoke)〉와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Heat)〉, 그리고 '조엘 슈마허' 감독의 〈타임 투 킬(A Time To Kill)〉을 거치며 비록 조연이긴 했지만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키스 더 걸(Kiss The Girl)〉을 통해 당당히 주연으로 발돋움했다.〈키스 더 걸(Kiss the Girls)〉은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과 유사한 사이코 스릴러물.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애슐리 쥬드'와 '모건 프리만'의 열연 덕분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아이 오브 비홀더(Eye of the Beholder)〉에선 자신에게 성적 접근을 해오는 남자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해 다시 한번 관객들을 자극했다. 특히 '팜므 파탈'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하며 영화 전편에서 끈끈한 에로티시즘을 표출해냈다. 클레오파트라의 흑발에서부터 마릴린 몬로의 부드러운 금발 웨이브까지 수십 개의 가발을 이용한 변신은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다. 영화 속에서 영국의 비밀수사관으로 등장하는 '이완 맥그리거'가 '애슐리 쥬드'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것도 이러한 매혹적인 분위기에 끌린 때문.

넘치는 에너지 때문일까? 배우로는 만족을 못했는지 이제 영화 연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내년쯤? 우리들 중에 몇몇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진화다. 난 책임을 맡는 것, 뭔가 포괄적인 것을 좋아한다. 폭 넓은 인식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가진 편이고, 하여간 나에게 있어 연출이란 소용돌이와 같다. 모든 자원과 에너지, 재능, 능력의 위대한 저장 탱크랄까. (내년까지) 기다리기 힘들 지경이다." 앞으론 카메라 뒤에서 메가폰을 잡고 멋지게 레디 고를 외치는 '애슐리 쥬드' 감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감독뿐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제작사 힐리빌리 필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열광적인 켄터키 대학 농구팬에다가 요가를 즐기며 평화봉사단에서 일하는 등 그녀의 관심사엔 제한이 없다. 이러한 열정이 '애슐리 쥬드'를 헐리웃의 보석으로 거듭나게 한 원동력이다.

※필자 조은성씨는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조감독, EBS 교육방송 〈시네마 천국〉구성작가를 거쳐 나우누리 영화 동호회 〈빛그림 시네마〉시삽, 잡지사 기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PD와 영화 컨텐츠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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