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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대선을 막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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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주차장에서 갑자기 내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뒤….” 금발의 여성은 충격적인 성추행 사실을 증언했다. 그가 지목한 범인은 미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 허먼 케인. 7일 오후 미국의 방송들은 이를 일제히 생중계했다. 케인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케인 캠프는 이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전하며 이번 사건의 진원지로 경쟁 후보 측을 지목했다. 대선을 정확히 1년 앞둔 미국 정치판의 모습이다.

 여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런 철면피가 없다. 최초로 케인의 성추문을 보도한 ‘폴리티코’는 언론이 왜 필요한지를 가르쳐준다. 반대의 경우라면 이보다 더 추악한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을 찾기 어렵다. 이처럼 치명적인 ‘낙인찍기’를 견뎌낼 후보는 없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투표할 것이다. 중상모략, 흑색선전의 네거티브는 그래서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네거티브를 기억한다. 아니 네거티브만 기억한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로 ‘박원순의 ○○○’ ‘나경원의 ○○○’을 채워보라. 협찬 인생, 1억 피부과…. 어느 쪽을 지지했든, 후보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만 또렷이 남아있을 것이다. 진실은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네거티브 선거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조지아주 케네소 주립대의 커윈 스윈트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하면 네거티브를 없앨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네거티브에 대한 유권자들의 폭발적인 관심, 이를 이용하려는 후보 측과 언론의 탐욕, 교묘함 속에 감춰진 진실, 한데 엉킨 이 고리를 끊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그는 다만 네거티브를 줄일 수 있는 단초의 하나로 ‘시간’을 들었다. 뜻을 품은 사람이 일찍 출마 의지를 공표하고 공약 발표 등 후보 활동에 나섬으로써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선거 막판 집중적으로 터지는 네거티브의 폭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점을 분산시켜 네거티브를 식상하게 만들면 네거티브가 투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의 대선판은 결전 1년을 앞두고 정리 국면에 진입했다. 내년 1월이면 여야 후보가 사실상 확정된다. TV 토론 일정은 이미 나왔다. 대다수 대선 후보들이 주지사, 연방 의원 등 공직을 거쳤는데도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데에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보다 엄격한 검증을 당당히, 그리고 충분히 받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을지언정 네거티브 한 방으로 쓰러지거나 도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적 계산을 버리고 담백한 마음으로 올해 안에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 그것은 네거티브로부터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이자 네거티브를 없애는 길이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