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창법 뿌리는 황해도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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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TV로 생중계된 환영공연이나 평양학생예술단의 서울 공연을 지켜 보던 사람들은 북한 가수들의 독특한 창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콧소리가 섞인 듯한 가성(假聲)으로 내는 맑고 깨끗한 고음(高音)이 특징이다. 우리가 듣기에는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섞여있다. 그래서 평소 말할 때와 노래할 때 발성법이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에서 '민성(民聲)'이라고 부르는 이 음색은 콧소리가 섞인 황해도 지방의 서도소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에서 예술적 정서와 선율적 구성이 매우 우수하며 밝고 유창한 민요로 평가하는 '양산도' '장산곶타령' '연파만리' 등이 서도민요다.

클래식 음악에서 가곡이나 오페라를 부를 때 사용하는 서양식 벨칸토 창법과도 다르고 남한에서 전통 발성법 중 최고로 평가하는 판소리 창법과도 다르다.

트로트와 비슷하지만 목을 뒤집지는 않는다. 민성(民聲)은 탁아소에서부터 재능있는 어린이들을 선발해 따로 집중적인 훈련을 실시해 얻어낸 후천적인 목소리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양성(洋聲), 즉 벨칸토 창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음높이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합창에서는 양성이 필수적이다. 베르디·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등에 북한 출신 성악가들이 심심찮게 입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독창(민성)과 합창(양성)을 위한 '바다의 노래'에서처럼 음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민성에 있다.

북한에서는 맑고 밝고 유순한 음색을 선호한다. 음악의 정서적 기능을 높이며 '형상성', 즉 표현력을 풍부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주체를 세우려는 근로 인민대중의 희망찬 현실을 표현하는 정서"와 통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음색은 듣는 사람이 즉각적인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며 가사의 속뜻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수단인 셈이다.

남한에서 높이 평가하는 시조·판소리는 "양반 계급과 도시 유흥 계층에 복무(봉사)"한 것이며 '탁성(濁聲)'이라고 하는 '소리'는 '부패한' 그들의 생활과 취미를 반영했기 때문에 음색이 필연적으로 어둡고 흐리며 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전통 국악기와 창법을 개량하면서 가장 큰 비중을 둔 대목이 이 탁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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