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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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세기 동안 서양 화가들에게 가장 풍요로운 영감을 제공했던 소재는 성서와 신화다.

그래서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유명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여기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장면이 무엇을 그렸는가 하는 아주 기본적 정보에서부터 이런 사물이 왜 이 공간에 있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상징적 의미 등을 모르면 작품을 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을 훔친 화가들〉 (노성두 지음.사계절)은 그림 읽는 법, 특히 성서를 소재로 한 르네상스 시대 전후의 서양미술 읽는 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미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한길사)를 통해 서양 회화 속에 담긴 그리스.로마 신화의 숨은 의미를 추적한 바 있다. 이번에는 서양미술의 또 다른 한 축인 성서읽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구약성서의 '아담과 하와' 에서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예수부활' 등 신약성서를 소재로 그린 성화들을 성서의 흐름에 따라 담고 있지만 성서의 관점으로 그림을 읽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화라는 이름 때문에 제약이 따랐던 당대 화가들의 예술적 자유의 문제에 주목한다. 엄격한 교회의 감독 아래서 어떻게 새로운 미술 실험을 했는가, 또 이같은 은밀한 실험이 표현의 확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조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주제를 화가마다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컬러 도판을 곁들여 철저하게 미술적 관점을 유지한다.

베로네세의 '레위가의 향연' 은 공식적인 예술 정책과 예술가의 창조적 자유 사이의 긴장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당초 수도원 식당 벽화로 주문받은 이 작품의 제목은 '최후의 만찬' 이었다. 하지만 식탁 옆에 그린 개 때문에 베로네세는 가톨릭 교회의 품위 규정을 훼손한 혐의로 1573년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의 출두 명령을 받는다. 베로네세는 그림 수정 명령을 받았지만 제목만 '레위가의 향연' 으로 바꾸었다.

한편 16세기 이후 예수의 존재 없이 독립주제로 자주 등장한 '막달레나' 에서도 교회의 위엄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티치아노는 처음에 가슴을 풀어헤친 성녀 막달레나를 그렸다. 하지만 옷을 입은 새로운 막달레나를 다시 그릴수 밖에 없었다. 역시 종교재판소의 위엄이 예술적 상상력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이 책은 에덴동산 추방 이후의 아담과 이브의 행복한 삶을 그린 페라리의 '아담과 하와' 처럼 성서에 없는 이야기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담은 작품을 시작으로 화가들의 상상력을 좇는다.

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롯과 두 딸' 은 세 부녀의 위치 설정이나 노출의 정도 등을 통해 기독교의 교훈과 시각의 즐거움 사이의 간격을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램브란트의 '삼손과 데릴라' 는 전투적 신앙을 독려했던 17세기 네덜란드 칼뱅교회의 영향으로 잔혹한 주제 그림이 쏟아졌던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서양미술 감상법을 배우는 재미에다 덤으로 듣는 성서이야기, 게다가 책에 언급된 모든 작품을 컬러 도판으로 만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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