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신뢰회복과 자금중개 개선이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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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5월의 급락이후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호재를 바탕으로 반등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덧 들떴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그간의 흐름들이 주춤해지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여러 재료들은 이미 시장에 노출된 상태다. 다만 또 다른 재료에 가려져 잠재돼 있던 수급과 자금문제라는 악재가 현증시에 재차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부터 불어온 주식열풍으로 인해 마치 모든 경제문제가 주식시장의 등락에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단기적인 주식시장의 등락보다는 중장기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들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특히, 실물경제 및 자금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는 보다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IMF라는 극단적인 시련과정을 지나 차츰 회복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발생한 대우사태를 비롯, 최근 들어서는 일부 현대계열 및 중견그룹들에 대한 자금경색 문제가 또 다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 실물경제에 불어온 문제점 중에는 해당기업 자체적인 문제보다도 자금흐름의 왜곡이라는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그 전면에는 투신 등 국내금융 기관들의 부실이라는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다.

은행예금을 포함한 시중 단기자금은 넘치는 상태

현재 한국의 금융시장은 은행 예금금리가 8%대에 불과할 정도로 저금리시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감소하고 자금의 흐름도 매우 원활해져 실물경제에는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중에는 이미 단기 유동자금이 2백조원대에 달하며 우량은행을 중심으로는 대규모 자금(저축성예금 46조원 증가, 반면 신탁자산은 20조원 이상 감소)이 잠재돼 있다.

그러나 실제 자금시장에 있어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회사채 시장은 이미 거래가 끊긴지 오래며 CP(기업어음)시장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소문이다. 특히 지난해와는 달리 주식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원중 하나인 증자도 사실상 어려지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일부 초우량 기업을 제외하고는 만기도래한 회사채를 차환발행하긴 커녕 전액 현금상환하려는 경향 마저 나타나고 있다.

투신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이탈과 기업들에 대한 자금경색은 심각

또한 금융권에 있어서도 일부 은행권에 대해서는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 반면, 투신 등 제 2금융권에 있어서는 자금이탈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 지속= 먼저 은행과 더불어 채권시장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투신사가 심각한 자금문제에 봉착해있다. 특히 자금원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채권형 수익증권이 지난해 대우사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이로 인해 투신사들도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서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 부실채권에 대한 잔존가치 문제= 또한 이번 주까지는 투신(운용)사가 보유하고 있는 1백억원 이상의 펀드에 대해 부실규모를 전부 밝히게 돼있다. 특히 투신권 펀드에 편입되어 있는 회사채 및 CP의 경우에는 평가등급별로 세부내역을 공개하고 부도 및 준부도채권에 대해서도 모두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시장 불신을 해소하려는 것이 기본 취지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7월부터는 채권 시가평가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기존 보유물량에 대한 가치 평가문제도 투신권에는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기업들의 자금난 심화= 여기에다가 일반 기업체들에 있어서도 최근 들어 회사채 만기물량이 급증하면서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상당부분의 회사채가 지난 97년과 98년 사이(IMF기간, 고금리 시기)에 발행됐다는 점에서 차환발행 또한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은 금융권에 대한 신뢰회복과 자금 중개기능의 개선이 관건

사실 현 상태는 추가적인 악재가 나왔다기보다는 기존 악재들이 그 규모가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른 충격흡수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또한 금융권내에도 자금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시장 내 자금 중개기능이 멈춰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물리적인 자금지원보다도 시중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이면서도 투명한 방안들이 모색돼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증시의 단기적인 급등락보다는 시중자금 흐름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주식시장에 있어서도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을 꼽으라면 투신사의 매도공세를 들 수 있다. 그나마 6월 들어서는 대북 경제협력이라는 호재성 재료와 외국인 투자가들의 대규모 순매수라는 그늘에 가려 잠시나마 수급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신사는 그 동안에도 쉬임없이 매물공세를 지속하고 있었다. 다만 그 이면에는 투신사가 한국증시를 불신하기 때문이라기보다 투신사의 자체적인 생존과 이를 위한 리스크 관리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 같다.

따라서 시장의 흐름도 단기적인 급등락보다는 실물경기 안정과 투신 등 금융권에 대한 정리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이후에야 그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투신권 펀드내역이 공개되는 이번 주가 시장의 또 다른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반영하듯 종합주가지수도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매매에 있어서는 기술적인 반등을 이용한 현금확보 전략과 이번에 가시화될 자금시장의 흐름을 관심있게 살펴볼 수 있는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판단된다.

SK증권 투자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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