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코스닥 등록 심사 이유있다

중앙일보

입력

매달 둘째.넷째 수요일 코스닥위원회의 등록 예비심사가 열릴 때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 벤처기업들의 안테나는 곤두선다. 심사결과에 대한 말도 많다.

더욱이 코스닥위원회는 기업의 비밀보호 차원에서 탈락이나 보류.재심의 사유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해석들도 구구하다.

"적자기업은 무조건 탈락시킨다더라" "심사위원들이 닷컴기업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 "어느 심사위원이 어떻다더라" 는 말들도 잇따른다.

위원회측은 이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그동안 수집된 심사의 뒷얘기들을 살펴보면, 코스닥 진출 예정기업들이 회계처리 등 기본적인 경영요소를 얼마나 등한시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부 기업은 도덕성까지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달 심사를 받은 A사의 경우는 회계상으로는 멀쩡했지만 모기업이 자본잠식 상태인데다 매출 또한 내부자거래의 흔적으로 남기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심사위원들간에는 "자회사가 코스닥에서 끌어모은 돈으로 모기업을 살리려는 것 아니냐" 는 점이 거론되면서 결과는 기각이었다.

또 B사의 경우는 매출을 부풀린 흔적이 드러남으로써 추가 입증서류 요청에 "없었던 일로 하자" 며 심사를 자진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 잇따라 보류.재심의 판정을 받아 '특정 심사위원의 영향력여부' 논란까지 벌어졌던 3R의 경우도 실제 관건은 연말에 집중됐던 매출 부분이었다.

결국 3R는 승인을 받는데 관세청 통관자료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처럼 매출.순익 등은 위원회측이 기업의 안정성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C사는 대주주가 집을 넓히는데 회사자본을 빌려준 점이 보류판정의 주요 원인이 됐고, D사는 벤처기업에 지원되는 정부 지원금의 사용처가 불분명했다.

최근 기각된 E사는 사용처를 밝히기를 거부한 '기타 운영자금' 의 규모가 임직원 전체의 임금보다 많았고 은행에 수십억원의 정기예금을 쌓아두고 있는 점이 탈락원인으로 작용했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위원회 실무직원 중 7명이 공인회계사이기 때문에 매출 부풀리기 정도의 장부조작은 금방 파악하게 된다" 면서 "어떤 경우는 검찰에 고발해도 될 만큼 도덕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고 전했다.

위원회측은 사전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통 해당기업의 대표에게 미리 통보하고 자진 철회를 유도하지만 끝까지 심사를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벤처기업 인큐베이팅업체의 金모 이사는 "이미 인터넷 공모를 하고 창투사를 끌어모은 상태에서 벤처기업 대표 입장에선 다른 주주들의 기대감 때문에 자진 철회하기가 쉽지 않다" 면서 "차라리 심사를 강행해 기각당한 뒤 심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편이 나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 심사위원은 "적자기업이나 수익성 모델이 없는 기업은 탈락이라는 식의 말들은 옥션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실과 다르며, 탈락 사유는 해당 기업이 가장 잘 안다" 면서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스닥 등록을 서두르기보다 건전하고 정상적 경영체제를 먼저 갖추는 것이 우선"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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