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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번째 편지〈일본 기행(2)-후꾸시라는 사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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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꾸시 쇼이치(福士正一). 그는 아오모리 공립대학 사무국 학예과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 그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랜드 호텔 11층 리셥션장에서 그는 샤미센(三味線) 연주 소리에 맞춰 가부키 전통 복장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춤은 무도(舞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일본의 전통 무용에 퍼포먼스 형식을 도입한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어서 그때마다 사위가 달라진다고 뒤에 들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도착해서 떠나올 때까지 심지어는 공항까지 부인과 함께 배웅을 나와주었습니다. 현청 공무원인 그는 퍼포먼스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그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한국에도 여러 번 와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와 말문이 트인 것은 도와다 호수 근처에 있는 온천에 들어서였습니다. 내내 여행을 함께 하고 있었지만 미처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온천욕을 즐기고 나와 예약된 식당으로 들어가자 기모노를 입은 세 명의 여자가 미리 무릎을 꿇고 앉아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식사는 등심구이와 가리비와 문어회입니다. 바다에서 나는 음식은 모두 좋아하는 터여서 저녁마다 생일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기모노가 사이사이 다가와 음식 뚜껑을 열어주고 술을 바꿔 줍니다.

말을 잃고 술에 전념하니 쉽게 눈이 취합니다. 어느 순간 후꾸시 쇼이치가 다가와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와 앉습니다. 얘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둘 다 영어는 그만그만 해서 결국 통역을 부릅니다. 말을 나눕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서 춤을 추는가?"
"비나 눈이 올 때. 또 소학교 운동장이나 부산의 자갈치 시장 같은 곳에서 춘다. 또 쓸쓸하고 적막하게 버려진 곳에서. 이 주 전에는 남원에서 춤을 추고 왔다."

"시장을 좋아하는 걸 보면 당신은 삶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럼 반대편에 죽음과 허무가 있는가. 그 사이에서 춤을 추는가?"
"그렇다. 빗속이 그렇고 눈이 내린 마당이 그렇다."

"마당에 가득히 내리는 눈, 이란 말이 있다. 아는가?"
"모른다. 하지만 풍경은 떠올릴 수 있다."

"거기서도 춤을 출 수 있는가?"
"......그곳은 칼날 위다. 하지만 추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짜 예술가인 것 같다."
"고맙다."

이게 그날 그와 나눈 대화의 전부입니다. 무릎을 꿇고 맥주를 몇 잔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그는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쯔가루의 다자이 오사무 생가에 갔을 때 그는 사양(斜陽)의 방 안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아마도 마흔살에 연인과 함께 동반자살한 다자이 오사무의 진혼을 달래려는 춤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춤을 추는 동안 뒤에 몰래 숨어 사진을 두 장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아오모리시로 돌아왔을 때 그가 초대해 밤늦게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예술가의 거처답게 목조로 지은 스튜디오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탈과 투구게와 수많은 음반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스튜디오는 집을 비워놔서 그런지 쓸쓸하고 냉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이나 된 고양이가 만 하루의 외로움에 지쳐 사람이 들어오자 아이처럼 머리를 문대며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어 고양이 한마리가 빈 집의 주인입니다. 고양이 열여섯 살. 그 정도면 개든 고양이든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로우면 사람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는 것입니다. 한가지 이상한 점. 그 고양이는 외로우면 제 몸을 사람에게 문지르긴 해도 절대 안기는 법은 없다고 합니다. 왜일까? 집을 나올 때까지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의문은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정종과 소주 중에 무얼 마시겠냐고 묻기에 소주를 달라고 하자 곧 부인이 오끼나와산 소주와 남원에서 가져온 김치를 내옵니다. 반갑게 소주에 김치를 먹습니다. 그 사이에 후꾸다 씨는 삼십 년 전에 나온 음반이라고 하면서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습니다.

그것은 아오모리 사투리로 녹음된 시낭송 앨범으로〈죽은 아내 후지꼬에게〉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시인은 한편 안과 의사였다고 하는데 음반을 내고 곧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후꾸시 씨도 그 사투리를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은 아내를 위해 읊어대는 그 목소리가 곧 시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하바로브스크, 삿포르를 거쳐 이쪽 동북 지방으로 내려온 것인지 그 음색에는 추운 대륙의 자성과 모성이 얼핏얼핏 겹쳐 있습니다. 옆에서 후꾸시 씨가 흐린 말투로 읽어줍니다.

"꽃이 많이 피는 계절에 나무 아래서 죽고 싶다."

죽은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한잔씩 차례차례 비워갑니다. 고양이는 잊을 만하면 옆에 다가와 머리를 옆구리에 문지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밤이 깊어가면서 김치가 쉬어 갑니다. 남편보다 몇 살인가 많다는 후꾸시 씨의 부인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6월인데 마치 밖에 눈이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싸안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려 봅니다.

"문패는 대문에 있는가 현관에 있는가."

일리터짜리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후꾸시 부부와 다시 술을 마시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밖엔 눈이 없고 그러나 아까는 보지 못했던 풀꽃들이 현관 초입에 하얗게 피어 있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문패는 현관에 있습니다. 〈후꾸시 쇼이치〉. 언젠가 그의 나이 많은 아내도 먼저 죽고 남편인 후꾸시만 남아 추운 대륙의 사투리로 죽은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부를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 집을 떠나왔습니다.

새벽 네시까지 그들 부부와 광어회 문어회를 안주로 술을 마십니다. 어두운 골목 술집에서. 술이 취해 가며 다시금 밖에 눈이 내리는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 자꾸 마음에 눈이 쌓여가는지. 죽음인가. 얼핏 진저리를 치며 파득거리며 꺼져가는 광어의 목숨을 붉은 눈으로 지켜봅니다. 부동의 춤.

헤어지기 전 후꾸시 씨가 종이를 내밀며 한자 적어달라고 합니다. 적습니다.

"어제 당신을 만나고 나서 밤새 눈 속에서 춤을 추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인지 혹은 죽음인지 몰라 이렇게 광어처럼 떨며 앉아 있었습니다. 삶은 꼼짝도 못하는 어리둥절함인 것. 움직이면 그것이 곧 죽음인 것."

돌아와 독실에서 잠이 듭니다. 밤새 설국처럼 눈이 내립니다. 마침내 십 미터. 현관에 달린 문패마저 눈에 가려집니다. 그 추운 집에 아직 혼자 남아 있는 열여섯 살 먹은 고양이. 죽은 아내 후지꼬에게.

아, 누군가 나이 많은 아내를 데리고 겹겹이 쌓인 눈을 헤치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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