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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예술교육이 살려 냈다, 문 닫을 뻔한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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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금정산(해발 801m) 중턱 금정산성마을. 이 마을의 유일한 공교육기관인 금성초등학교는 5년 전만 해도 전교생이 46명까지 줄어 폐교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120명의 정원을 다 채우고 대기자까지 있다. 금성초가 폐교 위기에서 학생·학부모들이 찾는 학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환경이나 시설 때문이 아니다. 교사들이 연구개발한 ‘통합예술교육’의 성과다.

부산 금성초 5학년 학생들이 과학·미술·실과가 통합된 생태미술 시간에 6월부터 만든 각자의 동물 작품을 들어보였다. [김경록 기자]

“나뭇가지로 만든 탑에서 가지를 하나씩 떼어내 빨리 무너지는 팀이 지는 거야.”

12일 오전 9시30분 금성초 뒷산에서 2학년 학생들이 ‘숲에서 자라는 감성’ 수업을 하고 있다. 숲체험 전문가 윤충현씨의 설명을 들으며 숲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놀이를 하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며 나무 생태에 대해 배웠다. 봄에는 숲에서 들풀이 나는 모양을 관찰하고, 황사도 만들어봤다. 최윤철 교사는 “숲에 들어가 나뭇잎 모양을 비교하고, 곤충을 관찰하며 학습 흥미와 이해를 높일 수 있다”며 “자연과 어우러져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도 배운다”고 설명했다. 유다현(2학년)양은 “책에서 동물과 식물을 보는 것보다 숲에서 보니까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5학년 교실에서는 ‘생태미술’ 수업이 한창이다. 생활 주변의 자연물을 활용해 다양한 미술체험을 하는 시간이다. 이날은 6월부터 진행된 동물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그동안 국어시간에는 어떤 동물을 만들지 토의하고, 과학시간에는 제대로 만들기 위해 동물 관찰에 집중했다. MDF(중질섬유판)를 자르는 과정은 실과에 해당된다. 박종필 교장은 “자연 속에서 놀잇거리를 찾으며 자연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4학년 3~4교시에는 ‘감성무용’ 수업이 진행됐다. 3월부터 이어져온 ‘금어신화’ 프로젝트다. 박선주 교사는 “금정산은 금빛우물이라는 ‘금샘’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며 “아이들이 이와 관련된 전설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고 설명했다. 감성무용은 무용과 연극·음악 같은 장르를 접목한 스토리텔링 수업으로 국어와 체육·음악·미술 과목이 통합됐다. 박 교사는 “3~4학년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시기”라며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교과 목표를 고려해 수업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통합예술교육은 6학년 ‘영화로 수다 떨기’ 수업으로 정점에 이른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매개로 국어·실과·사회를 통합해 생각과 감정 표현을 배운다. 김지태 교사는 “시나리오와 콘티·연기·촬영·편집까지 영화 한 편을 만들며 언어·조형·신체·음악적 표현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몰입의 즐거움, 교과 내용 이해와 흥미 높여

금성초가 2006년 3월 폐교 위기에 처했을 때 교사들은 학교를 살리는 방법을 ‘문화예술’에서 찾았다. 최 교사는 “문화와 예술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고,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최윤철·박선주·김지태 교사는 각자 다른 학교에 재직하며 주제통합수업을 연구하다 금성초의 위기 소식을 들었다. 이후 일본의 기노쿠니학교와 폐교를 살린 작은학교교육연대 등을 방문하며 문화예술을 접목한 통합수업을 연구했다. 해외에서는 예술과 과학처럼 서로 다른 분야를 융합해 가르치거나 미술과 음악 같이 서로 다른 예술 분야끼리 융합한 통합예술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이들 교사는 2006년 이 학교에 자원해 부임한 후 통합예술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후 1년이 지나자 전교생이 두 배로 늘었다. 교통이 불편한데도 학생이 몰려들었고, 마을에 빈집이 사라졌다. 산 아랫마을에 사는 김민재군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로 통학해야 하지만 딱딱한 교과 내용을 예술로 배우니까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통합예술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진행된다. 교사들이 1년 동안 배울 교과의 교육 목표를 기준으로 예술교육을 접목한다. 처음에는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해 수업을 했다. 박 교장은 “뜻있는 지역 예술인들이 자원봉사로 하다가 2008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인 ‘예술꽃씨앗학교’로 선정된 후 지금은 지원금을 받아 강사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통합예술 형태로 수업이 진행되면 상급학교에 올라가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최 교사는 “미술과 음악에 교과 내용을 접목해 이해도 빠르고 흥미도 높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예술에 몰입해 본 경험이 있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 장기적으로는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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