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기름값 ‘2000원 공포’ 지방으로 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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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가격이 L당 2300원을 넘어섰다. 이날 경기·인천 지역 기름값도 2000원을 넘겨 기름값 ‘2000원 도미노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인천 지역 보통휘발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L당 2000원을 넘어섰다. 25일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경기·인천 지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가격은 L당 2001.93원과 2005.18원을 기록했다. 이 지역의 휘발유 가격은 2008년 국제원유가가 사상 최고(배럴당 138달러)로 치솟았을 때도 L당 1960~1970원 선을 넘지 않았다. 제주 지역 휘발유 가격도 오전 한때 L당 2000원을 넘겼다가, 1990원대로 돌아왔다. 기름값 ‘2000원 도미노’ 현상이 수도권을 지나 지방에까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전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1991.34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휘발유 가격은 2065.27원으로 두 달 가까이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휘발유 가격은 L당 100원 할인을 하던 때를 제외하곤 꾸준히 2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강남 일대 주유소 중에는 2300원을 넘긴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름값 고공 행진 원인으로 ‘9월 환율 약세’를 꼽고 있다. 원화 값이 점차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유사들이 시차를 두고 환율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정유사들이 원유를 정제해 소비자에게 석유제품으로 팔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어 환율·국제유가 변화분을 시차를 두고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환율이 안정되고 있지만, 세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분간 국제유가가 올라 국내 기름값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종 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는 기름값에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름값이 국제유가·환율과 연동해 오르는 탓에 딱히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정유사 마진은 상당히 억눌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장 내 경쟁을 활성화해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구조적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석유공사 등이 기름을 싸게 사 400여 개의 무폴주유소에 공급하는 ‘알뜰주유소’의 연내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세부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정유사가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대리점·주유소 등 판매대상별로 공개하는 ‘유통단계별 공급가격 공개’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다음 달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마진 구조가 더욱 투명하게 드러나 기름값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기대다. 그간 정유사들은 전체 평균 공급가만 공개해왔다.

 이에 대해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통단계별 가격 공개는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있어 지경부 내 규제개혁위원회도 처음에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국내 석유시장은 국제시장과 연동해 움직이는데 억지춘향이처럼 기름값을 잡겠다는 자세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기름값 잡겠다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보다 유사휘발유 단속을 강화하고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경부 내에서도 “유류세를 내리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유류세 전체를 인하하는 것은 혜택이 모든 계층에 다 돌아가므로 그보다는 특별히 어려운 계층에 한정하는 정책을 선호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민근·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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