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벨 딜로이트 부회장 ‘스마트 복지’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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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부가 돈을 얼마만큼 쓰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제대로 썼을 때 복지는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못 살겠으니 복지를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다른 쪽에선 “복지를 늘리면 재정적자만 불어난다”는 우려도 깊다.

 최근 방한한 로버트 캠벨(62·사진) 딜로이트 부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트 복지’를 강조했다. 스마트 복지란 ‘복지지출=재정적자’의 공식을 깰 수 있는 저비용·고효율의 복지다. 딜로이트는 150여 개국 출신의 전문가를 거느린 세계 4대 컨설팅그룹이다.

 -미국 복지정책의 맹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마디로 전략적이지 못했다. 각종 프로그램들이 목적이나 대상에 따라 어지럽게 분산돼 있다 보니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많은 돈을 써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

 -복지가 재정적자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 재정적자위원회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 주요 20개국(G20)에서도 복지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금처럼 건강보험·연금·빈곤가정에 재정을 지원하면 2025년에는 정부 곳간이 바닥난다.”

 -한국은 복지규모를 더 늘리는 게 우선이라는 요구가 많다.

 “한번 늘린 재정지출은 경제상황이 어려워져도 다시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렵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돈을 쓴 만큼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도 시스템화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스마트 복지’가 바로 그거다. 불쌍한 사람에게 무조건 많은 돈을 주는 것이 복지는 아니다. 복지의 대상을 분류하고, 복지의 목적을 분명히 잡아야 한다. 무슨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실제 원하는 결과를 얻고 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모니터링(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점검하란 뜻인가.

 “복지에 들어간 돈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실제 미국에서 싱글맘을 지원해 주는 복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혜택을 받으려고 일부러 이혼해 겉으로만 따로 사는 부부가 생겨났다. 복지의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그 결과가 항상 선하지 않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누가 점검자가 돼야 할까.

 “전체를 조율하는 것은 정부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잘해 낼 수는 없다. 발전한 기업과 의식 있는 시민단체 등을 활용해야 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오라클, SAP 등 세계적인 기업과 함께 복지정책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 작업이 기업들에만 좋은 건 아닌가.

 “복지 비용이 늘어난다고 해서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걸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기술을 가진 기업이 나서서 적은 비용으로도 혜택을 높일 방법을 찾는다면 ‘복지지출=재정적자’의 공식도 깨질 것이다.”

 -한국에 조언한다면.

 “현재 한국 상황은 1970년대 미국의 복지행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와 비슷하다. 그동안 한국이 이뤄낸 성과는 존중해야 한다. 복지수준에 비해 한국 정부의 빚은 비교적 적다. 지금부터 방향을 잘 세워야 한다. 먼저 복지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다. 인구변화에 따른 시나리오 분석 프로그램도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글=김혜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로버트 캠벨(Robert Campbell)=미국 딜로이트컨설팅(Deloitte LLP)의 부회장으로 공공정책 컨설팅 전문가로 꼽힌다. 딜로이트에서 36년간 미국 정부의 효율성 향상과 조직개편에 관해 조언했다. 최근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미국 초당적(超黨的) 정책센터(BPC)의 멤버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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