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우린 서로 딴 나라 사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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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정의감만으론 외딴섬을 운영할 수 없어. 부정은 정당방위라고!”

 일본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의 단편 ‘면장 선거’에 나오는 말이다. 이 작품은 자그마한 외딴섬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생결단의 부정선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두툼한 돈봉투 쓱 찔러 넣어 매수하고, 거나한 향응으로 내 편 만들고, 중상모략으로 상대 깎아내리고…. 온갖 탈법이 난무한다. 선거 뒤에 서로 얼굴 보며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소설은 소설이다. 초절정 부정선거가 막판에 축제로 바뀌면서 주민의 카타르시스는 한껏 분출된다. 작가는 주민들의 마을 사랑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우린 모두 섬을 사랑한다. 그래서 싸우는 거란 말이다.”

 요즘 서울시장 선거와 겹쳐 읽으면 꽤 흥미롭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선거가 도저히 축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여야의 균열과 갈등이 너무도 커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하다 보니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존중해 주질 않는다. 막바지에 이르자 선과 악, 정의와 불의라는 프레임에 선거를 끼워맞추려는 움직임마저 나온다. 누구는 상식과 비상식, 개념과 비개념이라고도 하더라. 자기 편에만 도덕적 세례를 해줌으로써 전투적 응집력을 끌어내 보자는 시도다. 누구 맘대로! 한마디로 이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다. 선거가 무슨 십자군 운동이나 이교도 토벌전이라도 되나. 상대가 악이라면 선거에서 이긴 뒤 싹 쓸어버리기라도 할 건가.

 그런 세력 때문에 사회통합을 구현해야 할 정치가 되레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서로 딴 나라 사람이라도 된 듯 치고받는다. 그렇게 벌어진 갈등의 골을 선거가 끝난 뒤 어찌 봉합할 것인가.

 세대갈등을 은근히 조장하는 것도 큰 문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가 다르면 의식도 다른 법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그 차이를 슬기롭게 융화시켜 왔기에 공동체가 유지된 거다. 이걸 대립으로 몰고가면서 그 마찰열을 득표의 동력원으로 삼겠다고? 더없이 비열하고 위선적인 전술이다. 먹물 좀 먹었다는 대학교수란 자까지 선거판에 발을 담근 채 그런 언동을 하는 걸 보면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여야가 다 그렇다. 권력을 행사하는 건 늘 소수 정치 엘리트다. 시민단체들이 미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시민이 권력을 쥐는 건 아니다. 뽑힌 자가 뽑아준 자들을 다스리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해 준 자들을 지배하는 게 현실이다. 이게 독일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가 말한 ‘과두(寡頭)지배의 철칙’이다. 실제 선거 이후의 정국 시나리오란 것도 정치 엘리트의 관점에서 나오고 있지 않나. 박근혜가 어찌 되고, 안철수나 손학규가 어찌 된다는 말들이 다 그런 식이다.

 물론 정치판에선 그게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유권자·시민의 관점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유권자·시민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느냐 말이다. 이미 나온 양측의 공약 가운데엔 딱 와닿는 게 없다.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공격은 적나라하게 한 탓일까.

 아무튼 지금까지의 판세를 보면 어느 한편의 압승이나 완패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겨도 간신히 이기고, 져도 근소하게 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선거에 이긴 다수는 갈등의 골을 넘어 소수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나경원·박원순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 근소한 다수가 횡포를 부리면 볼륨감 있는 소수의 반발과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자, 내일이 선거다. 싸움은 지금까지 넘칠 정도로 했다. 누가 되고 누가 떨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확 밝아지는 것도, 땅이 갑자기 꺼지는 것도 아니다. 모두들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야 할 처지다. 그러니 하루만이라도 유권자들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길 바란다. ‘면장 선거’에선 축제로 끝난 선거를 우리는 어떻게 마무리할지 함께 고민하자.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