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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엄지는 쉬이고 뜨거운 커피 한잔과 함께 현명한 선택 생각해보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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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럽에 카페가 처음 생긴 것은 1650년이었다. 중동 출신 유대인이 영국 옥스퍼드에서 선을 보였다. 런던에 건너오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반세기도 못 돼 런던에만 2000개가 넘는 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이처럼 인기를 끈 것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키스처럼 달콤한’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페가 정치적 장소인 까닭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무기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술집은 정치 토론을 하기에 안전한 장소가 못 됐다. 걸핏하면 목숨을 건 결투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는 달랐다. 뜨겁지만 이성적 토론이 가능했다. 당시 카페 입구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앉으십시오. 높은 사람이 왔다고 자리를 양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카페에는 민주주의의 향기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카페 중에는 비밀투표함에 손님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써넣을 수 있도록 한 곳도 많았다고 한다.

 오늘날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카페 역할을 대신하는 분위기다. 온갖 주장과 구호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분위기도 향기도 17세기 카페의 발끝만큼도 따르지 못하는 듯해 애 마른다. 카페보다는 차라리 술집 같다. 토론 아닌 욕설과 비방, 선동과 (거짓) 폭로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착각에서 비롯됐다는 게 내 진단이다. 이를테면 할 말과 못할 말의 착각이다. 평화로운 카페에서도 구별돼야 하는 차이다. 한 테이블에 모인 지인들끼리 속삭일 얘기가 있고, 다른 카페 손님들이 다 듣도록 크게 떠들 수 있는 얘기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경우에 따라선 지인들끼리도 삼가야 할 말이 있다.

 그런데 눈 없는 엄지는 눈치가 없다. 친구들끼리 속삭일 얘기를 마이크 잡고 떠든다. 꼴보수(?) 부모가 투표하지 못하도록 온천 예약을 해드렸다는 얘기나, 그걸 두고 진짜 효자 났다 두남두는 대꾸나 눈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온 동네가 다 들었으니 조용할 리 없다.

 문제는 소란한 동네에선 본질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서울시장의 공약 얘기는 온데간데없고 과장된 세대갈등만 남는다. 하긴 시장 후보들부터 착각하고 사는 인생들이니 동네만 탓하기 뭐하다.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다 해도 공사(公私)를 혼동하는 착각은 그만그만한 도토리 키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상대 허물엔 취객보다 더 거품을 문다.

 내일이 선거다. 이제 다들 술집에서 나와 카페에 앉을 때다. 후보나 유권자나 착각에서 깨어날 때다. 알렉산더 포프는 “커피는 정치가를 현명하게 만들며 멀리 내다볼 줄 알게 한다”고 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일 터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꼽았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후보는 공인으로서의 처신이 어때야 할지를, 유권자는 세 가지 덕목을 누가 더 갖췄는지를 생각해볼 때다.

이훈범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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