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 <레인보우 식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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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국에서 개봉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블레어 위치"라는 영화는 단지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유령 등의 공포의 대상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고도 엄청난 공포를 준 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에 임하는 관객들에게 대상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켜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최근 <어반 오퍼레이션>이라는 확장팩을 내놓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레인보우 식스>를 플레이하다 보면 공격하는 대상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퀘이크>와 같이 1인칭으로 구성된 이 게임의 시점은 3인칭 게임보다 몰입의 효과가 강하고 시야가 극히 좁아서 게이머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유일하게 적을 파악할 수 있는 심박감지기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공격을 할 수 없어 숨어서 적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그 공포감만큼이나 적을 타격했을 때에는 쾌감도 크게 된다.

군사스릴러 작가 톰클랜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레드스톰에서 출시한 <레인보우 식스>는 <퀘이크>나 <언리얼>과 같은 1인칭 액션 게임에서 표방하는 SF 세계관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현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적으로 설정된 테러리스트들은 총격에 고통스러워하고 수류탄 소리에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간다. 그들을 진압하고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게이머 역시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총알을 맞고 다리를 절기도 하고 수류탄 소리에 놀란다. 인질들도 마찬가지이다. 게이머를 보고 뛰어나오다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미션이 실패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치밀한 전략을 세워 인질을 구출하는 재미는 다른 게임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미션들이 폐쇄된 장소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괴물이나 로봇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긴장을 하고 게임을 임하게 된다.

게이머들 사이의 멀티게임은 싱글플레이와는 또 다른 긴장감을 준다. 상대방은 컴퓨터와는 달리 수류탄을 던져도 도망가지 않고 돌진하는 경우도 있고 심박감지기를 피하기 위해 잼머를 쓰기도 한다. 멀티플레이에서 게이머가 총을 겨누는 상대방은 게임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격을 지닌 인간과도 같이 느껴지게 된다. 실제 전투와 같은 느낌때문에 <레인보우 식스>의 멀티게임 서버인 게이밍 존에서는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인 게이머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던 "파이어"라는 게이머의 유명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레인보우 식스>의 국내 인기의 요인으로는 대한민국 남성에게 주어진 병역의 의무도 한 몫을 했다. 직접 총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대다수의 성인 남성들에게는 이 게임의 표적지나 수류탄이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다. 수많은 <레인보우 식스>클랜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고 이들은 국내 현존하고 있는 부대의 마크를 직접 제작해 존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국내의 인기로 인해 후속작인 <로그스피어>에서는 한국인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고 확장미션 <어반오퍼레이션>에서는 국내 유통사에서 제작한 한국 미션이 2개 추가되기도 했다. 또한 현재 제작중인 외전에서도 한국관련 미션이 삽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 <레인보우 식스>관련 게임들이 국내 출시시 일부 수정되어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등급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등급의 내용에 따라 성인들에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심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체와 혈흔을 게임에서만 차단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처음엔 대작들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단순한 3D액션으로만 국내에 들어왔던 <레인보우 식스>는 이제 우리 나라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1인칭 액션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래픽을 추구한 나머지 극악의 고사양이 되어 대부분의 게이머가 게임방을 이용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에 숨바꼭질을 할 때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숨어서 두근두근 술래를 기다렸던 기억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멋진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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