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메이저리그 역사 (2) - 베이브 루스의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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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데드 볼'이란 타자가 공에 맞아 출루하는 힛바이피치(hit-by-pitched ball)의 일본식 조어이다. 하지만 원래 '데드 볼(dead ball)'은 반발력이 없는 공을 의미한다.

19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는 바로 '데드볼의 시대'였다. 한 시즌 10개의 홈런만 넘기면 능히 홈런왕이 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08년 디트로이트의 샘 크로포드는 8개의 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을 됐고, 피츠버그의 티미 린치는 1902년 불과 6개로 홈런왕을 차지했다.

따라서 그 당시 최고타자의 표준은 정확한 타력과 빠른 발을 갖고 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타이 콥이었다. 콥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통산 타율을 갖고 있고(.367), 그 밖에 통산 최다안타 2위(4,191), 통산도루 4위(892), 통산최다홈스틸 기록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19년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송두리채 바꿔 놓은 한 타자가 등장한다.

조지 허먼 루스. 훗날 '베이브'라고 불린 이 타자는 원래 투수 출신이다. 보스턴 시절 투수를 전업, 타자를 부업으로 삼았던 베이브 루스는 1919년 양키스 이적 후 본격적으로 타석에만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1919년 루스는 29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1919년은 투수들의 스핏 볼(spit ball)이 금지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그 전까지 공에 침을 발라 던지는 스핏 볼은 하나의 구질로 인정되곤 했다.

하지만 루스의 29홈런을 '스핏볼의 금지'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메리칸리그 홈런 2위 틸리 워커의 홈런수가 10개, 내셔널리그 홈런왕 가비 크레바스의 홈런수가 12개임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음해인 1920년 베이브 루스는 기적의 54홈런을 친다. 연일 작렬하는 루스의 홈런포는 블랙삭스 스캔들에 식상해 했던 야구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이후 루스의 홈런 맛에 길든 관중들은 이제 투수전을 싫어하게 됐다. 따라서 메이저리그 사무국 측도 계속 공의 반발력을 높여 많은 홈런이 양상되도록 했고, 이제 야구의 꽃은 홈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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