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장문석 "시련을 던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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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쭈쭈바 다섯개만 주이소" . 장문석(26)은 마운드를 내려오자마자 땀이 식기 전에 구멍가게로 뛰어가 '쭈쭈바' 를 샀다. 동아대 2학년 때였다.

볼을 던지고 난 뒤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얼음찜질을 해야 했지만 학교에는 트레이너도, 아이스박스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쭈쭈바 아이싱' 이었다. 쭈쭈바 다섯개를 하나로 묶어 얼음찜질을 하며 터진 실핏줄을 응고시켰다.

그러나 학교는 '혹사' 를 강요했다. 현실이 그랬다. 동아대 2학년 때 대학야구봄철리그 8강전. 1994년 4월 17일이었다. 건국대를 상대로 무려 16이닝을 혼자 던졌다. 이틀에 걸친 연장 23회 승부. 결국 5 - 4로 이겼지만 어깨는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그날 던진 투구수는 2백70~2백80개로 기억된다.

97년 LG에 입단했다. 계약금만 3억원을 받았다. 그만큼 기대를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나 일곱 경기에 출전해 2패만 기록하고 1승도 못 올렸다. 6월 14일 전주 쌍방울전. 선발로 올라갔으나 3과3분의1이닝 만에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마운드를 내려왔다. 어깨 앞.뒤쪽 근육이 모두 끊어져 버렸다.

'계약금만 축낸 놈' 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1년간 재활에 힘썼으나 결과적으로는 허송세월이었다. 결국 98년 1월 경희의료원에서 어깨에 칼을 댔다.

모든 걸 새로 시작했다.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맥주 한잔은 괜찮다고 했지만 2년 동안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때부터 눈물나는 재활훈련을 계속했다. 하루 10시간씩 1㎏짜리 아령을 달고 살았다. 지긋지긋한 세월이었고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늘만 참으면 나아지겠지" 라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어깨는 그런 고통을 통해 새로 만들어졌다.

99년 6월. 다시 마운드에 섰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 그해 후반기에만 4승을 올렸다. 올해는 더 자신이 생겼다. 팀에서 "15승은 충분하다" 고 용기를 줬다.

그러나 그럴 욕심은 전혀 없다. 단지 아프지 않고 1년을 던져보는 게 소원일 뿐이다. 어떻게 다시 찾은 어깨이고 어떻게 다시 올라간 마운드인가.

8일 현재 방어율 1위(2.74)에 6연승을 질주하며 LG의 에이스로 떠오른 장문석의 '인간승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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