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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Occupy 서울 … “이념 단체 개입, 변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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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한국판 집회인 ‘여의도를 점령하라’ 주최 측 관계자 A씨는 13일 기자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저희는 요즘의 미국 뉴욕 시위처럼 금융문제에 초점을 맞춰 문제점 개선과 제도 마련을 15일 집회에서 요구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그날 특정 이념 성향의 집회가 크게 벌어져서 경찰과 충돌이 있을까 봐 우려됩니다.”

 15일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지난달 시작된 ‘Occupy’ 시위가 전 세계로 번져 25개국 400여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날이다.

 이에 맞춰 금융소비자협회·투기자본감시센터·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여의도를 점령하라’ 집회를 기획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금융관료 책임 규명 ▶금융자본 피해자 구제 ▶금융공공성 강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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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의 걱정은 같은 날 3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99% 공동행동준비회의’가 주도하는 또 다른 집회 ‘Occupy 서울’이 열린다는 것이다. 서울역·서울광장·청계광장 일대에서 열릴 이 집회에 참여하는 단체는 한·미FTA반대범국민운동본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등이다. 경찰 등 공안 당국이 과격 시위집단으로 보고 있는 단체들이다. A씨는 “그들이 우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과격 성향의 단체들이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를 일으켜 경찰과 충돌을 빚으면 여의도 집회의 성격마저 함께 매도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의 원조 격인 ‘Occupy 월스트리트’가 탈이념적 동기에서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것과 달리 이번 주말 열리는 ‘Occupy 서울’은 이념 단체가 주도해 세력 결집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99% 공동행동’이 주장하는 내용은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제도 철회, 미디어렙 법안 통과, 4대 강 사업 반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이다. 금융문제에서 비롯된 빈부격차 확대를 주로 지적하는 뉴욕의 것과 다른 내용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요구 사항이 통일되지 않은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공격적 성향을 띄어 왔다”고 말했다.

 99%공동행동은 15일 오후 6시 서울광장에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라. Occupy 서울’ 집회를 1박2일 동안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3일 주최 측에 집회 불가를 통보했다. 경기도 포천시의 농특산물 전시회가 사전 신고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대한문 앞이나 청계광장을 제3의 장소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대문서 관계자는 “여러 단체가 함께 여는 집회여서 일부가 준법을 주장한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시위대가 이를 어길 경우 현장에서 즉각 엄격하게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최대 5000명이 집회에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 남성일(노동경제) 교수는 “성급하게 과격한 의견을 표현하기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고 우리나라 사정을 고려한 대책을 함께 고민해 보는 게 우선”이라며 “세계적인 추세라는 명분이 생겼다고 해서 본질과 동떨어진 특정 단체만의 주장을 대변하는 장으로 변질되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욱·김효은 기자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9월 중순 뉴욕 월가(街) 주코티 공원에 청년 실직자 수십 명이 모여 시작한 시위. 잘못된 금융 정책에서 비롯된 소득 불평등 문제를 주로 지적한 이 시위는 현재 세계 25개국 400여 도시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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