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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반대 166 ... 몸싸움 없었던 미 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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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사천리 같았다. 하지만 12일(현지시간) 하루 미국 의회에서 이뤄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 표결은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하원의 경우 찬성표가 278표였지만 반대표도 151표나 나왔다. 특히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들 중 찬성표는 59표에 불과했고, 반대가 130표나 됐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호소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집권당 소속이지만 FTA에 대해서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에서도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21명이나 됐다. 상원은 하원보다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하원을 통과하고 넘어와 반대자들의 김을 뺀 상황에서도 반대가 15명이었다.

 한국 특파원의 입장에서 신기한 것은 이날 한·미 FTA에 반대한 상·하원 166명 의원들의 태도였다. 이날 오전 10시 같은 시간에 각각 상원 본회의와 하원 본회의가 소집됐다. 찬반 토론은 하원의 경우 오후 5시가 가깝도록 계속됐다. 상원은 오전 10시 시작된 토론이 하원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됐고, 오후 7시17분에야 표결을 시작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내년에 선거를 앞두고 있는 터라 지역민을 의식한 반대의원들은 집요했다. 동원한 논리도 다양했다. 코네티컷주의 하원의원인 로사 들로로(민주)는 “한·미 FTA가 중국산이 불법으로 미국 시장에 유입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며 중국에 부정적인 동료 의원들을 자극했다. 오리건주의 피트 드파지오 (민주)의원은 “한국 자동차 업체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이 협정으로 미국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오바마 대통령과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상원에선 버니 샌더스 의원 등이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 종결을 선포하고 표결에 들어가자 반대하던 의원들은 묵묵히 자신의 한 표만 행사했다. 회의장을 걸어 잠그는 일은 없었고, 상대당에 대놓고 욕설을 퍼붓거나 보좌관들이 본회의장을 에워싸는 일도 없었다. “속기록에 내 주장을 충분히 남겼다. 지역민들은 그걸 보고 판단할 거다.” 회의장을 나서는 의원들은 평범하지만, 한국 국회에선 듣기 쉽지 않은 말을 남겼다.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