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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 첼로소나타는 ‘격정적 바흐’ 듣는 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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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27면

스티브 잡스가 별세하자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 또 도지기 시작한다. 부고 성격 기사에서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는 일이야 지당 마땅한 일이지만 거기에 양념을 첨가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 언론의 상투적 양념이란 훌륭한 업적을 이룬 인물은 이른바 ‘인간성’도 마땅히 훌륭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온갖 시시콜콜한 사연을 찾아내 감동적인 미담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대체 업적과 인간성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오히려 인간성 좋은 사람은 학문이나 예술·기술 분야에서 업적 남기기가 힘들다. 위아래 인간관계 잘 챙기다 보면 어디 틀어박혀 무언가 만들어 낼 틈이 없을 터. 위인전류에 흔히 등장하는 포장을 뚫고 실체를 알아보면 실은 모나서 정 맞느라 상처투성이인 위인이 즐비하다.

詩人의 음악 읽기 졸탄 코다이

잡스는 잘 모르겠지만 벨라 바르토크는 분명 좀 뾰족뾰족한 인물이었을 듯하다. 그의 생애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에 속하는 농촌민요의 채록과 연구 업적은 물론 훌륭한 목적성을 갖고 있었다. 첫째, 서방에서 헝가리 음악으로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이 실은 집시음악이라는 것. 집시가 많이 들어와 살지만 헝가리는 엄연히 동방에서 이주해 온 마자르족의 나라다. 둘째, 긴 역사를 통해 압제자 독일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다는 점. 마침 국민주의라고 부르는 민족적 자각이 싹트는 시점이라 게르만과 구별되는 마자르만의 오리지낼리티를 찾아내는 일은 지엄한 사명감의 발로였다. 하지만 뾰족뾰족한 바르토크는 사명감에서 멈출 수 없었고 이렇게 술회했다. “농민음악 연구에서 완전한 소득을 얻는 일은 무엇일까. 농민음악의 어법을 완전히 소화한 뒤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독자적인 자기 음악의 모국어로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바르토크는 완전히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세계로 나아갔다. 그의 개성은 어둡거나 난폭하거나 날카롭게 표현됐다.

인간성을 떠올린 것은 바르토크를 말할 때 항시 쌍으로 따라다니는 졸탄 코다이(사진) 때문이다. 그 둘은 일생을 동행한 벗이자 동료였다. 그런데 인간성, 자기 개성을 창출하는 것이 더 큰 목표였던 바르토크의 생애는 구불구불한 험로였고, 조국과 민족에 이바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코다이는 헝가리에서 ‘음악의 국부, 조국의 문화적 휴머니즘의 완성자’라고 표현되며 최상급의 존경을 누린다. 85세까지 장수하는 동안의 다양한 활약상을 보면 그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바르토크는 크고 코다이는 상대적으로 작다. 당신이라면 둘 중 누구의 인생길을 택하겠는가. 그런데 잠깐, 인격자 코다이의 생애에서 꽤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젊은 날 열정에 불타 농촌민요를 찾아 떠돌 때 실은 바르토크·코다이 두 사람만 다닌 것이 아니었다. 산도르 엠마라는 여성이 동료로서 함께했다. 29세의 청년 코다이는 50세의 엄마뻘 동료 엠마에게 청혼해 결혼했고, 그 부인이 97세로 사망할 때까지 해로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79세의 코다이는 21세의 아름다운 새 부인을 얻어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혼기가 좀 기이하긴 하지만 구태여 판단과 평가를 내려야 할까.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멋지구나!

코다이의 평생 신념이 ‘누구나 아무나 음악을 할 수 있어야 한다’이다. 그 바람에 활동이 음악교육 쪽으로 치우쳤고 작곡도 합창곡에 주력했다. 비교적 덜 애호받게 된 내력이 이 점인데 그렇다고 절대 만만한 작곡가는 아니다. 모음곡 ‘하리 야노슈’에 담긴 해학과 관현악의 색채감은 20세기의 중요한 음악적 성과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신명나는 ‘갈란테 무곡’, 장엄한 성악곡 ‘헝가리 시편’도 걸작 반열에 올라 있다. 하지만 코다이 음악을 찾게 되는 가장 큰 동기는 그의 ‘무반주 첼로소나타’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속적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보다는 바흐음악과 연장선상에 있는 곡으로 보인다. 바흐의 그 유명한 무반주 첼로조곡 제6번에 이은 7번 곡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정적인 바흐에서 동적인 바흐로, 거기에 격정이 세게 실렸다. 20여 년 전 시인 하재봉이 영화평론가로 날릴 때 문인들을 시사회장에 불러모으곤 했는데 그런 기회로 봤던 영화가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아주 오랫동안 격정적인 첼로 독주가 작렬하는데 바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소나타였다. 도입부 영상에 어우러진 팽팽한 첼로 독주 사운드는 지금 떠올려도 ‘후덜덜’이다.

네메 예르비가 지휘한 ‘하리 야노슈 모음곡’.

바르토크 옆의 코다이처럼 큰 존재 옆의 부록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나는 일생 ‘독고다이’였는데 요즘 부록이 돼 가고 있다. 늘 어울려 노는 자가 함께 식당을 갈 수 없을 만큼 유명해져 버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덤덤하다. 뭐, 부록도 한 생이니까. 허, 그런데 그 자가 드디어 ‘중앙SUNDAY’까지 침투해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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