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일발장전” 그루밍족 병영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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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공군사관학교에선 지난달 27일 패션수업이 열렸다. 패션업체 코오롱FnC 주최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스타일링 클래스’에서 생도 120여 명은 옷 잘 입고 멋내는 법을 배웠다. 정규수업 외에 음악 공연이나 등산강좌가 열린 적은 있지만 스타일링 수업은 처음이다. 행사를 담당한 정훈공보관실 최재형 중위는 “멋내기에 관심이 많은 요즘 생도들의 취향에 맞춰 업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스타일링 클래스는 앞서 20일 경기도 부평 제3군수자원사령부에서도 열렸다. 코오롱 측은 당초 이 행사를 단발성으로 기획했으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높아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부평 제3군수자원사령부에서 코오롱FnC가 마련한 스타일링 클래스가 열렸다. 한 군인이 나와 직접 옷차림 변신을 체험해 보고 있다.

 군인 그루밍(grooming)족이 늘고 있다. 사회와 떨어져 있지만 패션·미용에 관심을 쏟는 군인들이다. 피부 관리는 일반인보다 더 적극적이다. 군인들 사이에선 자외선차단제·핸드크림은 기본이고 폼클렌징과 에센스까지 4종 제품을 ‘기본’으로 친다. 뙤약볕·혹한 속에 진행되는 훈련에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의 군인용 ‘익스트림 파워 위장크림’은 지난해 말 출시 이래 매달 100%가량씩 판매가 늘면서 지난달 말까지 7만6000여 개가 팔렸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육군부대에서 근무 중인 성모(22) 상병은 “같은 생활관원 12명 중 8~9명은 두 가지 이상의 화장품을 쓰고, 대부분 보급품인 오이비누 대신 ‘폼클렌징(거품비누)’을 사서 쓴다”며 “특히 한여름 훈련을 마치고 나면 수분팩이나 미백 에센스를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군인 그루밍족’의 증가에 대해 우송대 뷰티·디자인과 김혜균 교수는 “요즘 입대하는 20대 신세대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외모 가꾸기에 익숙하고, 화장품을 안 쓰던 이들도 공동생활 과정에서 그루밍을 보고 배우며, 부대 내 인터넷 보급으로 상품 주문이 쉬워진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사회와 격리돼 생활하다 보니 유행과 트렌드에 뒤처질까봐 입대 전보다 더 의식하고 노력하는 현상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군인 그루밍족의 증가는 물품 구매에서 잘 나타난다. 군인물품 쇼핑몰 ‘곰신닷컴’은 2001년 개점 당시 화장품 판매가 거의 없었으나 최근엔 전체 매출의 30%가량을 차지한다. 과거엔 손난로나 행군용 깔창이 위주였다면 요즘엔 화장품과 전투화 때문에 생기는 발 각질을 없애는 풋크림, 발샴푸가 인기다.

 남성화장품 쇼핑몰 ‘엠엑스세븐’은 군부대 주문 판매가 전체의 20% 를 차지한다. 엠엑스세븐의 백연희 실장은 “과거엔 어머니나 애인이 필요한 물건을 보내줬다면 요즘은 군인들이 직접 주문하는 경우가 60% 이상”이라 고 말했다.

이도은·서정민 기자

◆그루밍(grooming)족=패션·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 가죽이나 털을 다듬다, 말의 갈기를 빗질하고 목욕시키는 마부라는 뜻의 단어 groom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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