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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중국의 e스타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① 왕준타오(8848.net)
…창업 1년 중국 최대 EC업체로 키워…별명은 ‘네티즌들의 맏형’

48.net(北京珠穆朗瑪電子商務網絡服務有限公司)
는 지난해 5월18일 개통돼 불과 1년 만에 중국 최대의 인터넷 전자상거래업체로 부상했다. B2C 영역에선 이미 독보적인 자리를 구축했고, 점차 B2B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8848.net의 견인차는 왕준타오(王峻濤·38)
. 1962년 중국 남부 푸젠(福建)
省에서 태어나 78년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 컴퓨터를 전공했으며 82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우주항공부에서 IT(정보기술)
관련 업종에 종사하던 그는 87년 도미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디지털 제어와 인터넷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89년 귀국한 그는 선천의 한 외자기업에서 기술 업무를 담당하며 창업을 준비한다.

처음 손댄 것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도서 유통. 곧 이어 푸젠성은 물론 중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판매상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그는 꾸준히 인터넷 사업 기회를 모색한다. 98년 인터넷 쇼핑몰 구축에 들어가 마침내 소프트웨어 전매 쇼핑몰인 연건항(軟件港·연건은 소프트웨어)
을 선보인다. 이 쇼핑몰은 그 해 푸젠성 10대 우수 사이트에 선정된다.

지난해 王은 베이징 연방소프트웨어유한공사에 전자상거래 사업부를 설치하고 부총재 CIO에 취임했다. 본격적인 전자상거래 서비스 업체인 8848.net은 이렇게 해서 빛을 보게 됐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인터넷 기술과 응용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의 ID 로우룽(老榕)
은 아주 유명하다. 그는 또 망상대협(網上大俠·네티즌 큰형)
이라는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사이버 판매의 핵심이 유통망 구축과 전략적 제휴사의 다원화에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 두 가지를 실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배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체국과 처음으로 제휴했고, 4백20여 주요 도시에 이 EMS 시스템을 활용해 배송을 하고 있다.

컴팩·인텔·3COM·다이아몬드·델 등의 다국적 기업들과도 손잡고 다양한 상품을 네티즌에게 선보이고 있다. 전자결제 시스템도 중국 최초로 도입했다. 초상은행·건설은행·중국은행 등과 제휴한 8848은 중국인민은행 전자금융 인증센터가 승인한 최초의 기업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앤디 글로브 인텔 회장은 이 회사에 대해 ‘중국 전자상거래 새 규칙의 제정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王은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하고 B2C·B2B·C2B·C2C 등 다양한 전자상거래 모델을 한 플랫폼에서 시도하고 있다.

이 방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8848의 쇼핑몰은 현재 30여만종의 상품을 사이버 판매하고 있다. 하루 방문자수는 50만명이 넘는다. 페이지뷰 히트 수는 9백만회를 상회하고, 매월 50% 이상 늘어나고 있다. 8848이란 이름을, 王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고도에서 따 왔다. 중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키우겠다는 그의 야심이 담긴 작명이다.

② 왕즈동(sina.com.cn)
…세계 최대의 중문 포털 산파역… 北京 중관촌 출신

sina.com은 세계 최대 규모의 중문 포털 사이트. 중화권에서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사령탑은 왕즈동(王志東·33)
.

95년 王이 두번째로 미국에 갔을 때 실리콘 밸리는 인터넷 붐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음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을 접한 그는 사흘 밤낮을 인터넷 카페에서 보냈다. 중국 최고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주역다운 면모다.

그는 베이징(北京)
대학 무선전자학과 출신이다. 87년 3학년 때였다. 학기가 끝난 후 그는 학교 앞에 위치한 중국의 실리콘 밸리 ‘중관촌’으로 향했다. 당시 그곳에서 오리지널 코드도 없는 미국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중문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과 AutoCAD의 중문화와 IBM 5550의 한자 시스템 개발에 매달렸다.

그의 인생에 첫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중국에서 판매되던 북대방정(北大方正)
의 편집 시스템과 사통(四通)
4S 시스템을 컴퓨터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한 사용자가 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는 한 달 만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자 이 사용자가 북대방정측에 그를 적극 추천했다. 북대방정측은 王을 직접 찾아와 연구원이 돼 달라고 청했다.

89년 이 회사에 입사한 王은 2개월여 만에 세계 최초로 윈도 외부 레지스트리 시스템 중문 윈도 1.0을 완성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는 기술적으로 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했다. 91년 그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동기생과 함께 맨손으로 신천지유한공사를 설립했다.

그는 영문 프로그램의 중문화 환경을 구현해 주는 중문지성(中文之星)
1.0을 발표했다. 당시 회사는 부도 직전의 상황이었다. 뜻밖에도 중문지성은 예상을 뒤엎고 92, 93년 연속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계속적인 기술 개발과 경영 애로에 지친 그는 회사를 사직하고 방정(方正)
, 연상집단(聯想集團)
등 큰 회사들을 찾아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그러나 모두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 때 사통그룹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공동으로 사통리방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총경리에 취임했다. 이 회사는 그 후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5백만명이나 되는 리치윈(RICHWIN)
이라는 중문 환경 소프터웨어를 개발한다.

96년 2월 王은 미국에서 열린 한 기술투자 세미나에 참석한다. 인터넷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할 때였다. 그 해 4월 귀국하자마자 그는 국제인터넷사업부를 설립하고 사사이트(www.srsnet.com)
를 개통했다. 이 사이트는 중국어 검색, 뉴스 서비스, bbs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중국내 인터넷 확산에 많은 기여를 했다.

97년 초 중국의 과학기술 지원 프로그램인 863 계획의 “인터넷상 중국어 응용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 수행업체에 지정된 이 회사는 미국 선사와 자바 실험실을 공동으로 설립한다. 그 해 10월엔 미국의 벤처 투자업체 3곳으로부터 6백5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때부터 그는 국제화에 눈을 돌린다. 98년 9월26일 그는 베이징에서 미국 화연사(華淵社)
의 강풍년(姜豊年)
사장과 제휴하고 “세계 최대의 중문 사이트 건립”을 추진한다. 사이트 이름은 본래 화연망(華淵網)
의 영문 이름인 SINA를 따 새낙왕(賽諾王)
으로 하기로 돼 있었다. 王은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으로 신랑(新浪)
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신랑망(新浪網)
은 이렇게 탄생했다.

③ 장자오양 (www.sohu.com)
…중국 포털의 대명사 ‘소후’ 설립… 타임지 선정 ‘디지털 영웅’

98년 2월 오픈한 포털 중문 사이트 소후(搜狐 www.sohu. com)
는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소후는 중국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신문·비즈니스·부동산·체육 등 다양한 디렉토리를 개발해 네티즌들에게 온라인 교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사이트 방문자수는 6백만명을 상회한다.

설립자는 미국 야후의 제리양과 종종 비교되는 미래학자 장자오양(張朝陽·36)
. 그는 애특신공사(愛特信公司)
를 설립, 소후를 구축함으로써 중국 ICP 사업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80년대에 청화대학을 다닌 張은 당시 여느 중국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8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마침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7년 만인 93년 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독보적인 가치가 중국에 대한 이해와 지식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도교수를 설득해 MIT의 중국 연락 책임업무를 맡는다.

귀국을 2, 3년 앞두고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중국과 관련된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귀국하기로 결심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인터넷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가 중국의 지역 책임자 자리를 맡아 달라고 제의했다.

전부터 인터넷과 관련된 업무를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당시 그의 목표는 중국에 인터넷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새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대로 그는 귀국한 지 8개월 만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한다. 그는 처음부터 독자회사를 구상했었다.

이를 위해 그는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MIT 실험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96년 8월 애특신공사를 창립했다. 이듬해 시장조사를 거쳐 검색 사이트로 방향을 잡았고 98년 마침내 소후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소후란 검색(搜)
과 중국에서 총명한 동물로 통하는 여우(狐)
를 조합한 말이다.브랜드가 검색 사이트로서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張은 중국에서 20년, 미국에서 10여년을 살았다. 이중 문화에 대한 체험은 그의 사고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그 덕에 그는 특히 인문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98년 2월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디지털 영웅’에 선정됐다.

지난해 10월엔 ‘아주주간’의 커버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개통 2년 만에 sohu.co m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소후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사이트 방문자수를 기록하고 있고, 가장 국제화되고 전문화된 관리체제를 갖춘 사이트로 평가받고 있다.

④ 딩레이(www.163.com)
…중국 최고의 포털 창립… CEO자리 스스로 물려줘

망이공사(網易公司·Netease사, www.163.com)
는 97년 5월 광저우서 설립된 전문 인터넷 서비스 기업. 창업 1년 만에 주제별 뉴스 서비스,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 무료 전자우편,커뮤니티 기능 등을 중국 최초로 선보이며 단숨에 중국 최고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성장했다.

창립자는 딩레이(丁磊·29)
. 그는 97년 프로그래머 3명과 공동으로 NETEASE사를 창업했다. 수중엔 소프트웨어 판매대금과 친구로부터 빌린 돈 20만 위안(한화 3천만원)
이 있었다. 2평짜리 사무실에서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망이는 중문과 영문 코드를 갖춘 무료 웹메일을 서비스한다. 사업 초기 그는 공들여 개발한 시스템을 왜 무료로 서비스해야 하는지에 관해 투자가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벌인 인터넷 사업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그 덕에 그는 인터넷 인구의 50% 이상을 회원으로 선점할 수 있었다.

丁은 상하이에서 가까운 닝보(寧波)
에서 태어났다.

80년대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그는 컴퓨터에 매료돼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천 마일이나 떨어진 사천(四川)
의 전자과기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시절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서적과 잡지를 읽고 관련 학과의 강의를 듣는 데 쏟았다.

중국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닷컴 광고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인터넷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란 불가능했다. 교육용 네트워크의 초기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BBS만을 접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대학 2학년이 돼서야 처음 접했다. 대학을 마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닝보 전신국에 들어간다. 여기서 비교적 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2년 후 그는 광저우의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Sybase로 직장을 옮긴다. 이후 로컬 ISP 업체에 참여하면서 자기 사업을 구상해 Netease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순수 중국 토박이 기술자지만 연구자로서의 명성도 높다. 그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최고 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최고 기술자(CTO)
로 남았다.

자기와 같은 기술진을 양성하기 위해 이사회에서도 나왔다. 이후로 그는 인터넷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연구 장려금 1억 위안을 지원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망이의 전자 메일 서비스는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대다수 유명 사이트의 무료 전자 메일 서비스도 제공한다. 현재 네티즌 회원수는 약 2백80만명. 하루 페이지뷰 수는 1천1백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에 지사가 있고 종업원은 약 2백40명이다.

⑤ 마윈(www.Alibaba.com)
…중화권 최고의 무역사이트 구축

알리바바(阿里巴巴)
란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이 사이트를 개설한 사람의 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사이트를 만든 마윈(馬云·34)
은 스스로 꿈이 많다고 말한다. 몸매가 몹시 작고 생김새도 그리 호감이 가는 편이 아닌 그는 그러나 자기 주위의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3월 생긴 알리바바는 중화권내 전자상거래를 통한 무역 사이트 중 최고의 자리를 선점했다. 등록 기업수는 전세계의 45만개 회사이며, 매일 1천명의 비즈니스맨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이 세계적인 무역 사이트가 축적하고 있는 무역 정보 데이터는 30만건이나 되며 하루에 업데이트하는 양만도 1천5백여건에 달한다.

馬는 대학시절 영어를 전공했다. 지금도 그는 ‘컴맹’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95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교직을 사직하고 인터넷 회사 설립을 추진한다. 당시 그의 사업구상을 들은 24명의 친구들 중 23명은 그의 구상에 반대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2시간 동안 논쟁을 벌인 끝에 “정말 하고 싶다면 한 번 해 보라”며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당초 홍콩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알리바바란 이름 때문에 중국에는 전혀 홍보를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며 우회적으로 회사를 홍보해 큰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0월 미 골드만 삭스사로부터 5백만 달러를 유치했고, 지난 1월엔 일본의 소프트뱅크로부터 2천만 달러를 받아들였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알리바바의 수석 고문이다. 馬는 “인터넷 업체는 토끼보다 빨리 뛰고, 거북이보다 인내심이 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2∼3년밖에 안 된 전자상거래 시장이 현 단계에서 일정한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 등 아시아권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사이트를 건설할 능력이 없다고 전자상거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B2B 형식의 전자상거래가 가장 유망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B2B에 주력하고 있다.

⑥ 퉁자웨이(Meetchina.com)
…인터넷 종합상사 미트차이나 설립

중국도 오프라인 기업에 대한 전자상거래 서비스로 이윤을 내고 있는 인터넷 업체는 손꼽을 정도다. 미트차이나(美國商務網, Meetchina.com)
가 그 중 하나. 올들어 불붙기 시작한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회사기도 하다.

사업을 총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퉁자웨이(童家威·37)
총재. 88년 난징(南京)
대학 경제학과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날아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귀국 후 91년 선천에서 무역과 컴퓨터 업무에 종사하다 95년 미국 포드자동차의 재무담당으로 옮긴다. 그리고 97년 연봉 21만 달러의 직장을 포기하고 미트차이나를 창업한다.

선천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중국기업들이 자기 상품을 외국에 제대로 홍보하고 바이어를 발굴해 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그 무렵 막 피어나던 인터넷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바이어가 황제인 국제 무역구조 속에서 바이어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 점에 착안해 그는 미트차이나를 창업했다.

WTO(세계무역기구)
에 가입하면 중국은 세계 최대의 생산기지로 부상한다. 여기서 나오는 상품을 온라인에 올리고 물류 시스템화하겠다는 것이 미트차이나의 사업 방향이다. 특히 무선 인터넷을 활용한 전자상거래 시장에 그는 집중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다.

미트차이나는 중국의 6개 주요 산업부문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중국 신식산업부의 전자신식중심(신식은 정보)
, UN 정보화 기술 촉진위원회의 중국부문, 중국 중앙방송국, 중국 방직공업총국, 중국 경공업총국, 중국 화공총국 등이 그것들이다.

미트차이나를 통해 현재 4만여개의 중국 국내 업체와 1만2천여 해외 바이어들이 무역 거래를 하고 있다. 거래액은 6천만 달러에 달한다.

⑦ 천용지엔(www.it163.com)
…중국 최대 백화점들의 연합 쇼핑몰 선봬

중국 최대의 백화점들을 온라인상에서 연결하는 전자상거래 모델을 구축하면 어떨까? 지난해 11월 이를 사이버상에서 구현한 사람이 바로 it163.com 총재 천용지엔(陳永健·39)
이다. 그는 선천에서 백화점에 근무하며 중국전자발전유한공사의 총경리로도 재직했다. IT(정보기술)
산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

그가 구축한 it163.com 인터넷 쇼핑몰은 베이징의 서단상장(西單商場)
, 왕부정백화대루(王府井百貨大樓)
, 상하이의 익민백화(益民百貨)
, 광주남방대하(廣州南方大廈)
등 중국 전역의 대형 백화점 50곳을 묶어 구축한 중국 최대의 사이트다.

그는 특히 서비스 분야일수록 니드가 강한 소비자 서비스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구축할 것인가에 역점을 두었다. 많은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이 운영상의 문제로 고객과의 분쟁(예를 들면 상품반품, 고객의 상품접수 거절, 불편 신고)
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내규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구입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낮다.

그는 이 점에 착안했다. ‘중국 인터넷 연합 쇼핑몰’의 최대 가치로 통일된 브랜드, 통일된 상품 구색, 통일된 서비스를 내 거는 한편 상품의 판매 범위를 확대하고 판매 원가를 낮춘 것이다. 서비스 질은 높이고 상업이윤은 극대화한 것.

이에 따라 인터넷 쇼핑몰의 품질을 담보하기 위해 연합 가입 백화점들은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오프라인에서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또 대규모라야 한다. 다음으로 컴퓨터 등 인터넷 사용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조건도 구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류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한 배달 서비스 시스템도 사전에 갖춰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배우성 전문위원(차이나 IT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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