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올바른 길로만 가기를 바랬던가?

중앙일보

입력

몇 년 전 반다이사의 <다마고치>는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대단한 게임기였다. 실시간으로 커 가는 액정 속의 생물을 키우는 이 게임은 사용자의 임의대로 게임을 제어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용자가 게임에 이끌려 가는 듯한 느낌을 주어 충격을 주었다.

포켓용 게임기의 경우 휴대가 간편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게임 속의 생물을 제어할 수 있지만 PC용 게임의 경우 실시간 육성 게임의 플레이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PC용 육성 시뮬레이션의 경우 <시간의 나라 꼬마요정>, <테오 핀핀>등이 출시되었으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현재 육성 시뮬레이션의 원조로는 가이낙스의 <프린세스메이커>시리즈를 꼽는다. 롤플레잉과 시뮬레이션만이 게임장르의 전부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게임 속의 딸을 키운다는 개념은 대단히 새로운 발상이었다.

<프린세스메이커(이하 pm)>는 전통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시작한다. 시리즈별로 차이는 있지만 플레이어는 한 왕국에 은거하는 전설적인 용사이고 우연한 기회에 딸을 얻게 되어 8년간 자유롭게 키우는 내용의 이 게임은 현재 외전격인 Q판까지 총 4개가 나와있다.

일본에서 제작되는 다른 게임시리즈처럼 이 게임도 우리 나라에 매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독특하게 여성팬층이 꽤 많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일단은 게임의 테마가 제목처럼 공주(그러나 논리적으로 왕의 딸이 아니기 때문에 공주는 될 수 없다.)만들기이기 때문에 게임속 어딘가 숨어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이 여성플레이어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가 순정만화와 가깝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여성용 게임의 불모지에 여성 팬들의 지지까지 받은 이 게임은 2편이 가장 큰 흥행을 하지만 시리즈가 3편, Q편으로 거듭될수록 형식주의에 빠져 많은 인기를 많이 잃은 상태다.

PM의 출시 당시 인간이 커 가는 과정을 직접 게임으로 즐긴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광고가 되었다. 실제로 PM을 해보면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직업과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이 어느 정도 담겨있어 나름대로 느낄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사실 교육적 가치보다 남성의 관음증의 시선이 더 많이 담겨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이것은 또한 흥행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 인간(대체로 여성캐릭터)에게 일정한 스케줄과 분기에 따른 선택을 게이머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가학적인 심리가 자극되고 그 심리를 실현해 줄 장치가 게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던 것이다. (이 문제는 다마고치를 일부러 죽여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례로 가장 완성도가 있고 재미가 있었던 2편의 경우 비밀주점과 밤의전당 등의 약간은 위험한 아르바이트 장소가 제공되기도 했고 직업 엔딩의 경우도 첩, 매춘부 등이 존재했다. 딸의 의상도 갈아 입힐 수 있었는데 반라의 옷 아이템 하나는 국내 출시때 삭제되기도 했다.(도대체 아버지가 왜 그런 옷을 입힌다는 건가?)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플레이어인 아버지와 딸과의 결혼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요소는 출시 당시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반드시 역기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위험한 아르바이트인 밤의 전당 같은 곳은 플레이중 항상 허덕이던 돈을 쉽게 벌 수 있지만 도덕 수치 등의 올리기 힘든 다른 모든 수치가 엄청나게 많이 떨어지는 핸디캡이 있다.

결론적으로 돈에 대한 유혹에 못 이겨 이런 아르바이트를 딸에게 시킬 경우 좋지 않은 엔딩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PM이 현재 우리 사회의 수많은 어두운 곳에 대한 작은 가르침을 준 것은 사실이다.

PM 3편이 실패한 후속 작이 된 이유로는 2편까지 무사수행이라는 가장 인기가 있었던 미니 롤플레잉 게임이 빠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역시 일명 배드 엔딩이라는 캐릭터의 타락한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도 보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PM의 매력은 게이머의 가학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데에서 있었다고 본다.

육성시뮬레이션처럼 게이머의 성격이 많이 반영되는 게임도 없다. 심지어 버릇, 습관까지도 게임속 캐릭터에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분기점과 엔딩이 있을수록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 하반기에 출시 예정인 PM 4편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윤곽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출시가 되면 또 많은 남성들은 게임 속의 딸에게 자신이 살지 못했던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고 그 몰락과 번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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