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홀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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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스텝, 리듬

결혼한 중년의 샐러리맨인 스기야마(야쿠쇼 고지)는 전철의 유리문을 통해 젊은 댄스 강사인 마이(구사카리 다미요)의 고혹적인 이미지에 반해 댄스 교습소를 찾는다. 마이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이미 새로운 '스텝'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일탈적인 세계로의 진입은 잠시 정차중인 전철문을 빠져나오는 결정적인 한 걸음에서 시작되지만, 댄스 교습소 앞에서 그의 발은 이내 어물쩡거리고 결국 댄스 교습소를 들어가려는 사람을 피하려다 꼬여버린 스텝덕분에 새로운 세계의 진입이 이루어진다(그는 손이 아니라 '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려움은 물론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기능적인 손(업무를 보는 손)이 아니라 발의 스텝이다. 이것은 몸의 하부이자 그 동안 은폐되었던 하위 세계이기도 하다.

발은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자연적이며 동물적인 부분이다. 발은 인간 몸의 하부중에서도 가장 밑에 있으며 자연-대지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사교 댄스'는 불순한 욕망의 표현처럼 보인다. 스기야마는 이제 발이라는 몸을 매개로 이중적인 도전을 한다. 자신의 욕망을 불순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체의 뒤뜰과도 같았던 스텝과도 싸워야만 한다. '댄스'는 일상으로 인해 굳어버린 몸을 풀어버리고 '발'의 표현적인 기능을 회복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아쿠쇼 고지는 얼굴의 표정이 아니라 발의 스텝으로 연기한다. '처음에 주저하면 안된다. 과감하게 발을 내밀어야만 한다'라는 마이의 충고는 그런점에서 시사적이다.

의도의 불순함이야 어찌됐건 간에 중년의 샐러리맨은 점차 '댄스'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댄스 강사인 마이 또한 새롭게 춤을 발견한다. 춤은 스텝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스텝이 아니라 리듬을 즐기는 것이다.

리듬의 충돌, 파트너 쉽

리듬을 획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먼저 일상적으로 굳어버린 발을 풀어주어야만 하고(전철역에서 혼자 스텝을 밟아보는 스기야마를 보여주는 부감 쇼트는 정말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의 스텝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새로운 리듬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리듬 혹은 다른 리듬과 어떻게 충돌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충돌을 극복할 것인가가 정작 중요하다. 그래서 댄스 경연장에서 자신감에 차있던 마이가 춤을 추다가 다른 커플과 충돌했던 사건은 스기야마가 댄스 경연장에서 딸의 목소리로 인해 파트너의 옷을 벗겨버린 소극과 미묘하게 조응한다. 춤을 추는 과정에서 다른 커플과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신뢰감이다. 마이는 충돌로 인한 쓰러짐에 좌절했던 것이 아니라, 리듬을 깨뜨리는 충돌의 순간에 파트너가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던 것에 괴로웠던 것이다.

스기야마는 '댄스'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에 갑작스럽게 파고 들어온 일상('아빠'라는 딸의 목소리)으로 인해 좌절한다. 일상의 리듬과 일탈적 세계의 리듬이 충돌하는 순간 그 또한 좌절한다. 하지만 이 두 세계 혹은 리듬은 가정에서(부인과의 댄스) 그리고 댄스홀(마이와의 댄스)에서 회복된다.

수오 마사유키는 그러니까 단순한 댄스라는 '특정한'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 인간이 새로운 스텝과 리듬을 발견하는 것의 삶의 기쁨, 다른 스텝과 리듬들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새로운 공존의 질서(조화)를 발견할 것인가라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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